바람이 살랑…조각에 숨을 불어넣었다
by오현주 기자
2012.08.02 09:38:47
모빌 창시자 칼더 ''누아르'' 전
국제갤러리 17일까지
검은색 작품들만 전시
색채의 중요성 역설
| 알렉산더 칼더 ‘구멍이 있는 검은 모빌’(1954 ⓒ 칼더재단)(사진=국제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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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조각은 어딘가에 단단히 고정돼 있는 것인 줄만 알았다. 일부러 옮겨놓기 전까진 한자리에 박혀 있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80여년 전 그 습관적 관념을 헤집어놓은 이가 있다. 조각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다. 고정적 오브제가 아닌 유연한 연결고리로 이뤄진 물체가 눈앞에서 흔들거리게 했다.
이후 ‘이동하는’ 혹은 ‘부유하는’이란 뜻의 형용사 ‘모빌(mobile)’은 운동성을 지닌 ‘움직이는 조각’이란 고유명사가 됐다. 허공에 떠 있는 추상적 형체들이 조화로운 변화 속에 율동을 하며 균형을 잡는 작품. 조각이 속한 공간에 혁명성을 부여한 그 대단한 발상은 알렉산더 칼더(1898∼1976)에서 나왔다. 그가 모빌을 처음 만들었다.
칼더의 작업은 철사를 비틀고 구부려 공간에 입체적 형상을 그려내는 새로운 조각법이었다. 과학적 발명에 버금갈 혁신에 ‘모빌’이란 이름을 붙여준 건 프랑스 현대미술가 마르셀 뒤샹이다. 1931년이었다. 여기에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백조와 같은 우아한 움직임’을 지닌 ‘물질과 생명의 중간쯤’이란 표현으로 극찬을 얹었다.
칼더의 작품엔 모빌에 대비되는 정지된 조각 ‘스태빌(stabile)’도 있다. 스태빌은 1932년 독일 화가 장 아르프가 붙여준 이름. 바닥에 세운, 모빌과 차별된 지칭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사실상 칼더의 작품세계는 모빌과 스태빌이란 두 형태가 조합을 이룬 스탠딩 모빌로 한층 발전한다.
미국서 태어나 뉴욕에서 회화를 전공한 칼더가 전환기를 맞은 것은 1926년 프랑스로 이주하면서다. 거기서 그는 나무와 철사를 사용해 움직이는 장난감과 조형물을 제작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예술적 방향을 잡은 결정적 계기는 1930년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던 때다. 몬드리안의 그림을 입체로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구상에서 추상으로 돌아서게 했다. 그리고 1934년부턴 본격적으로 공중에 뜬 채 기류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조각으로 확장했다.
| 알렉산더 칼더 ‘검은 짐승’(1940 ⓒ 칼더재단)(사진=국제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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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아르(Noir)’란 테마로 열리고 있는 칼더의 개인전은 모빌과 스태빌 모두를 갖춰놨다. 다만 전시가 집중한 건 색이다. 불어로 검정이란 누아르의 뜻 그대로 칼더의 작품 중 검은 조각을 뽑아 꾸렸다. 시기적으론 193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해당된다.
스태빌 중에선 칼더의 초기 걸작으로 꼽히는 ‘검은 짐승(Black Beast, 1940)’을 볼 수 있다. 동물적 운동성을 보이지만 공학적 계산에 따른 색과 선의 균형미를 아우른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구멍이 있는 검은 모빌(Black Mobile with Hole, 1954)’도 왔다. 금속판을 나풀거리는 잎사귀처럼 보이게 한, 극도로 절제된 수평·수직의 동적 구도가 탁월한 작품이다.
검은색 작품들은 전시장의 흰색 벽과 격한 대조를 이루며 강렬함을 풍긴다. 형태나 움직임 못지않게 칼더에게 색채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드러내려 한 의도적 장치다. 국내선 두 번째 개인전, 2003년 이후 9년 만이다. 6점을 내놨다. 작품 수는 많지 않으나 칼더가 꺼내놓은 예술적 언어의 다양성은 결코 적지 않다. 17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02-735-8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