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절대 모른다 이 섬의 숨은 매력
by조선일보 기자
2009.04.30 12:00:00
[조선일보 제공] 좋은 바다는 제철에 가장 초라해 보인다. 사람에 치이어 그 각별한 아름다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충남 보령 대천여객선터미널서 배 타고 30분 거리인 원산도를 제대로 보려면 요즘이 딱이다. 서해에서 찾기 힘든 오붓한 해수욕장이 섬 곳곳에 있어 여름 휴가철이면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다른 계절엔 비교적 한적하다. 부근 안면도 꽃 박람회 덕분에 원산도로 가는 배편도 덩달아 늘어난 요즘은 여유롭게 산 바다 마을 예쁜 이 섬을 즐길 수 있는 기회다.
원산도 대표 산인 오봉산은 오르락내리락 다섯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서해에 있는 섬엔 산이 그다지 많지 않을뿐더러 있더라도 남해만큼 웅장하지 않은데 오봉산 역시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능선을 갖추고 있어 '등산'이 아닌 '산책' 수준의 산길을 즐길 수 있다. 편한 길은 반가운데 섬 산을 오르는 핵심 재미인 쭉 뻗은 바다 조망(眺望)이 없을까 하는 걱정에 등산로 입구에 집을 수리하던 '본바닥 원산도 사람' 강태공(52)씨에게 "전망이 좋나요"라고 물었다. "전망유? 끝내주지유. 서천까지 다 보일거유. 우린 40분이면 올라갔다 오지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솔잎 푹신하게 깔린 등산로에 들어섰다. 해수욕장 찾아오는 이들은 많아도 굳이 산 타러 원산도까지 들어오는 사람이 적어서인지 등산 안내판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마을버스 딱 한대 다니는 섬마을 주민들의 '지름길' 역할을 톡톡히 하는 산이라 산길은 반듯하고 곧게 이어졌다. 솔방울이 콩콩콩 머리 위로 떨어질 듯 가득 열린 울창한 소나무가 해풍과 섞인 달콤한 내음을 빚어냈다. 여느 섬 산과 달리 숲이 빼곡해 비밀 정원으로 들어가는 듯한 신비함을 자아냈다. 오른쪽 숲 사이로는 하늘과 경계가 사라진 바다가 틈틈이 인사를 했다.
아래서 내려다볼 때 봉긋봉긋 솟아 있는 다섯개의 봉우리는 오르고 내리는 재미를 더해줬다. 올라갈수록 오른쪽으론 부드러운 해수욕장 해안선이, 왼쪽으론 물 댄 논 너머 배들이 들고 나는 항구 풍경이 펼쳐졌다. 시원하게 바다만 뻗은 풍경도 나쁘진 않지만 사람과 배와 경운기가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마을 풍광'도 아기자기한 재미를 줬다.
| ▲ 충남 보령 원산도 오봉산에서 내려다본 항구엔 배가 쉬지 않고 나고 들었다. 높지 않은 산에서 내려다보는 사람 사는 풍경이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
|
오봉산 해수욕장에서 시작해 봉화대를 지나 해수욕장 서쪽으로 내려와 다시 해수욕장으로 돌아가는 데는 한 시간이면 족하다. 짧은 산행에 아쉬운 마음은 해수욕장에 발 담그고 땀을 식히며 달랜다. 어느새 하교 시간인지 책 하나 덜렁 들어갈 것 같은 작은 책가방을 휘휘 돌리며 바닷가를 마구 뛰어 집으로 가는 어린이들의 검게 탄 얼굴이 샘날 정도로 건강해 보였다.
섬에서 나오는 길엔 '연륙부동산'이란 간판에 눈에 들어왔다. 대천과 원산도를 잇는 연륙교가 지어질 예정이라서 섬의 땅값이 오르고 사람이 몰리고 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다리가 놓인 다른 섬처럼 변하기 전, 원산도의 외딴 느낌을 마음에 담아놓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