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모한 싱 전 인도 총리 92세로 별세…"인도 경제성장 주역"
by양지윤 기자
2024.12.27 08:02:12
영국서 독립한 후 최초 비힌두교 총리
형설지공으로 켐브리지대 입학
경제학자·IMF 거친 뒤 재무장관 발탁으로 정계 입문
재임 당시 인도 9%대 경제성장률
"가장 성공적인 인도 지도자 중 한 명"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만모한 싱 전 인도총리가 26일 9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 2004~2014년까지 인도의 13대 총리를 역임한 만모한 싱 전 인도 총리.(사진=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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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통신 등 주요외신에 따르면 이날 싱 총리는 자택에서 의식을 잃고 뉴델리에 있는 전인도 의학연구소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두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노인성 질환 치료를 받아왔으며 갑자기 집에서 의식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4~2014년까지 인도의 13대 총리를 역임한 싱 전 총리는 인도 북부 펀자브주의 시크교 도시인 암리차르 출신으로 인도가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최초의 비힌두교 총리였다.
그는 인도의 전례 없는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제학자와 인도 중앙은행 총재, 정부 고문을 두루 거치며 1991년 재무부 장관으로 깜짝 발탁돼 정계에 진출했다.
현재 파키스탄 지역에 해당하는 펀자브주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 켐브리지 대학에 입학하기 전 촛불을 켜넣고 공부할 정도로 가난했다.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며 인도 경제에서 수출과 자유 무역의 역할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근무했던 그는 재무장관으로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1991년 연합 예산안을 발표하며 주목을 끌었다. 인도 의회에서 한 연설에서 그는 인도가 산업 개방과 경제 자유화라는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며 인도인들을 설득했다.
2004년 인도 국민회의당 소속으로 총리에 오르는 그는 재임 동안 인도는 최대 약 9%에 달하는 성장률을 달성했다. 전례없는 경자 성장의 시기를 이끈 그는 농촌 빈민을 위한 일자리 프로그램과 같은 복지 제도를 도입, 경제 성장의 성과를 나누는데 힘썼다는 평가다.
2008년에는 인도-미국 핵 협력 협정을 체결하며 양국 사이의 굳건한 외교 관계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 협정은 핵 비확산과 핵 기술 이전에 관한 합의로 미국은 인도에 민간 목적의 원자력 기술과 연료를 제공하고, 인도는 민간 원자로를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하에 두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싱 전 총리는 인도에 경제적 성과를 가져왔지만 부패 스캔들에도 연루됐다. 그가 석탄부 장관 직무대행을 겸임하던 2004년 7월부터 2년 동안 석탄부가 57개 탄광의 석탄 채굴권을 투명한 절차 없이 민간업체에 나눠준 사실이 드러나 수사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두 번째 임기 동안 일련의 스캔들이 터지면서 대규모 시위를 촉발하는 등 정부 구성원들을 단속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기도 했다.
특히 총리 임기 후반에는 세계 경제의 혼란과 정부의 느린 의사 결정으로 투자심리가 꺾이면서 그가 설계한 인도의 성장 스토리가 흔들리기도 했다.
소박한 생활 방식과 정직함으로 인도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싱 전 총리는 2014년 총선에서 나렌드라 모디 현 총리의 인도국민당(BJP)에 패배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로이터는 “처음으로 총리를 맡았을 때 ‘마지못해 왕이 된 사람’으로 묘사된 말수가 적은 만모한 싱은 인도에서 가장 성공적인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