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 명품 가득한 잔칫상

by조선일보 기자
2009.04.14 11:40:00

30회 맞은 서울연극제 16일 개막

[조선일보 제공] 《봄날》 《불가불가(不可不可)》 《심청이는 왜 두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상다리가 휘어질 것 같다. 올해 서른살을 맞은 서울연극제 생일상에 올라오는 '일품요리'들이다.

제30회 서울연극제가 16일 《피카소의 여인들》로 개막한다. 이어 지난 30년 한국연극계를 진동시켰던 명작 9편이 불려 나온다. 서울연극협회는 "역대 참가작 290여편 중 연극인·관객의 추천을 받아 리바이벌 작 9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1977년 대한민국연극제로 출발한 서울연극제는 한국연극을 견인했다. 2001년부터 3년간은 서울공연예술제로 흡수되기도 했다. 축제 겸 경연 방식으로 연극의 질적 수준을 높였고, 극작가·배우·연출가 등 재능 있는 신진을 발굴했다는 평이다.

30년 기념 잔칫상을 채울 9편은 발표순으로 1980년대가 4편, 1990년대 4편, 2000년대 1편이다. 1984년 초연한 《봄날》과 《한스와 그레텔》에서는 엄혹한 시대상이 읽힌다. 이강백이 쓴 《봄날》은 산골에서 절대권력처럼 군림하는 아버지와 일곱 아들들의 이야기다. 장남은 어머니같이 자상하고 막내는 병약한데, 한 소녀가 들어오면서 드라마가 급회전을 한다. 최인훈의 《한스와 그레텔》은 전쟁과 이데올로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망가지는가에 집중한다.

이현화가 쓴 《불가불가》(1987)는 "불가불(不可不) 가(可)요, 불가(不可) 불가(不可)요?"라는 대사로 유명하다. 계백 장군에 대한 연극을 준비하는 배우들을 통해 한국사의 아픈 상처를 들쑤신다.



오태석의 《심청이는 왜…》(1990)는 살벌하게 변한 세상에 분노한 용왕이 서울 암행에 나서고 심청이가 동행하며 겪는 비극. 심청이가 또 다시 몸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 충격적이다.

탄광 마을을 배경으로 들려줄 윤조병의 《풍금소리》(1986), 화가 이중섭을 주인공으로 김의경이 쓴 《길 떠나는 가족》(1991), 여성 작가 정복근의 대표작 《이런 노래》(1994), 이해제의 《흉가에 볕들어라》(1999), 이윤택이 쓴 《아름다운 남자》(2006)도 대학로에 회자되는 수작들이다. 

▲ 서울연극제도 과거 명작들에 힘입어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봄날》에서 장남(이대 연)이 아버지(오현경)를 업고 등장하고 있다./투비컴퍼니 제공


기라성 같은 배우·연출가들이 모인다. 지난 7일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50대 배우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불가불가》에는 김인태(79)·박웅(69)·이호재(68)가, 《봄날》에는 오현경(73)이 출연한다. 오현경은 "배우란 이런 것이구나를 깨우쳐 주었다"(극작가 이강백)는 배우다.

서울연극제에는 또 《흉가에 볕들어라》의 김재건·한명구, 《불가불가》의 전국환·박상종, 《한스와 그레텔》의 이호성·남명렬, 《길 떠나는 가족》의 정보석·이용이, 《심청이는 왜…》의 강현식·조은아·이수미, 《봄날》의 이대연, 《이런 노래》의 이혜경·김영필·김주완, 《풍금소리》의 예수정 등 믿음직한 얼굴들이 대거 참여한다.

《심청이는 왜…》의 오태석을 비롯해 채윤일(《불가불가》), 남미정(《아름다운 남자》), 이기도(《흉가에 볕들어라》) 등 초연 연출가들이 다시 매만지는 연극이 4편이다. 채윤일은 출연진이 30명이 넘는 《불가불가》에 전념하기 위해 부산시립극단 수석연출가에서 사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