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이 위대한 이유[임진모의 樂카페]

by김현식 기자
2025.02.03 08:45:00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우리도 곧 보게 되겠지만 작년 미국에서 화제의 영화 중 하나는 음악가 밥 딜런의 활동 초기를 다룬 ‘어 컴플리트 언노운’이었다. 영화 ‘듄’의 스타로 요즘 가장 핫한 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밥 딜런 역을 맡아 밥 딜런의 음악 세계를 잘 모르는 청춘들도 주목했다. 밥 딜런 영화가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리처드 기어, 케이트 블란쳇, 크리스천 베일, 고(故) 히스 레저, 벤 위쇼, 줄리언 무어 등 내로라하는 당대 톱 배우들이 총출동해 놀라움

을 던진 ‘아임 낫 데어’도 있고 명장 마틴 스콜세지는 2005년 다큐멘터리에 이어 2019년 ‘밥 딜런 스토리’ 등 두 편이나 감독했다.

한때 ‘대중문화의 메시아’로 일컬어졌을 만큼 밥 딜런이 전설적 존재임은 틀림이 없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도 그렇지만 누구도 예측하지 않았던, 얼핏 불가능해 보였던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인기 측면에서 그는 결코 중량급이 아니다. 아직도 그를 모르는 사람은 많다. 2020년 노래 저작권을 팔아버리기 전까지 무려 60년을 활동하면서 빌보드 싱글차트 10위권에 든 노래가 고작 4곡밖에 없다. 그 중 1위 곡은 하나도 없다.

방탄소년단(BTS)이 여덟 개의 넘버원 곡을 낸 그 차트 얘기다. 겨우 6년 뛰면서 1위만 스무 곡이나 낸 비틀스나 한 앨범에서만 다섯 곡이 넘버원이었던 마이클 잭슨에게 그는 상대도 안 된다. 그럼에도 음악 언론이나 비평의 사제들은 앞다퉈 그를 모시는 칭송과 충성 경쟁을 벌인다. 존 레논도 “비틀스 때도, 해산하고 나서도 그를 좇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대학에는 밥 딜런 커리큘럼 정도가 아니라 ‘밥 딜런과’가 생겨나기도 했다. 음악 관련 기자와 평론가를 먹여 살렸다는 말도 있다.

히트곡이 적어 대중과의 접점도 떨어지고 인지도도 빈약한데 왜 그토록 열렬히 밥 딜런을 숭앙하는 것일까. 먼저 실적을 넘어 빼어난 곡 주조술과 웬만한 문호에 준하는 언어구사력 등 천재적 능력을 빼놓을 수 없다. 빌리 조엘과 아델도 그의 노래 ‘메이크 유 필 마이 러브’를 리메이크했을 만큼 곡 자체가 매력적이며 가사는 만든 자신을 빼놓고는 아무도 뜻을 모르는 곡이 태반이다. 가히 범접불허다.



더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래는 스스로 만들어 부르는 것”임을 퍼뜨렸다는 것이다. 1960년대 이전까지 어느 나라든 대중가요는 전문 작사·작곡가 집단이 지배했다. 우리 경우도 1970년대까지 가수가 곡을 쓴다는 것은 조금 발칙한 일이었다. 밥 딜런의 위대한 공헌은 다름 아닌 ‘싱어송라이터’의 문화를 꽃피웠다는 데 있다. 어느 면에서 그것은 음악가의 자주독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밥 딜런이 등장하고 나서 후대의 무수한 뮤지션들이 자작곡을 내놓기 시작했다.

다른 하나는 그의 음악이 예술적 감동을 넘어 시대정신과 세대의식을 일깨웠다는 점이다. 1963년 본인이 히트시킨 게 아님에도 그를 청춘의 영웅으로 밀어 올린 곡 ‘블로잉 인 더 윈드’는 전 세계 젊은 베이비붐 세대 뮤지션들의 경종을 울리고 각성을 이끌었다. “와, 이런 노래도 쓸 수 있는 거구나!” 대중가요가 전쟁이 아닌 평화를, 무한경쟁이 아닌 인류애를 그리고 구속 아닌 자유를 노래하는 이성적 지적 장(場)으로 단박에 승격한 것이다.

한국에도 그 충격파는 고스란히 전해져 이 곡은 ‘바람만이 아는 대답’, ‘파란 많은 세상’으로 번안돼 불렸다. 밥 딜런에 쇼크 받은 영 포크 뮤지션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한대수 ‘물 좀 주소’, 김민기가 써서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과 ‘상록수’, 양병집 ‘타복네’, 서유석 ‘담배’는 이전에는 없던 저항가요였고 1970년대 초반 이런 노래들과 함께 음악판에는 리얼리즘의 깃발이 휘날렸다. 정작 밥 딜런 본인은 자신의 노래를 진지한 메시지라고 설파한 적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그의 행보를 진지하게, 엄숙하게, 거룩하게 예우한다. 어쩌면 대중문화의 매혹이 그에게 응집되었는지도 모른다. ‘어 컴플리트 언노운’을 빨리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