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 목마른 중장년 ''made in 명동''에 빠졌네
by조선일보 기자
2010.02.26 12:03:00
| ▲ 23일 인파로 붐비는 명동예술극장 앞 풍경. 지난해 6월 다시 문을 연 이 공연장은‘명 동 연극’의 부활을 수치로 말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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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제공]
유료 객석점유율 58%. 서울 명동예술극장이 개관 첫해인 작년에 올린 성적표다. 《밤으로의 긴 여로》《베니스의 상인》 등 자체 제작공연 4편만 종합하면 100석 가운데 62.8석을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객석 규모가 비슷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28.2%),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22.4%)과 비교하면 명동예술극장의 성적은 더 두드러진다. 연극평론가 김윤철은 "(공공 공연장으로서) 외국에 내놓긴 부끄럽지만, 국내에선 기록적인 수치"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6월, 34년 만에 복원된 명동예술극장은 1년도 안 돼 'made in 명동'이라는 신뢰를 만들고 있다. 이 브랜드는 20대와 80대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연극, 예술성과 대중성의 조화로 압축된다. 연극평론가 구히서는 "갈 때마다 1960~70년대 명동극장에 대한 기억을 가진 관객이 많은 것 같았다"면서 "작품의 질을 고르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명동예술극장 관객은 평균적으로 50대다. 40~70대의 비중이 높아 여느 공연장과 다른 풍경도 발견된다. 인터넷·전화 예약이 아니라 현장에서 표를 사는 관객이 많고, 대부분 일찌감치 공연장에 도착하기 때문에 공연 직전 로비가 한산하다. 객석에서 프로그램을 판매하고, 티켓과 활자 크기가 큰 것도 특징이다. 《맹진사댁 경사》 등 연극 두 편을 봤다는 관객 양덕분(61·서울 화곡동)씨는 "젊은 시절 명동에서 일한 향수도 있고, 대학로와 달리 우리 나이에도 볼만한 연극들이라서 만족한다"고 했다.
지난해 모두 113회 공연해서 관객 4만3712명(유료 2만8616명)을 모은 명동예술극장은 불편한 점도 많다. 우선 장애인 편의시설과 주차시설이 없다. "정문이 무거워 열기 어렵다" "엘리베이터와 화장실이 비좁다"는 불만도 있다. 프로그램 측면에서는 너무 중·장년 취향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구자흥 극장장은 "관객의 폭을 넓혔다는 자긍심이 있다. 올해는 고전부터 현대까지, 창작극과 번역극을 적절히 안배했다"면서 "편의시설은 계속 개선할 계획"이라고 했다.
■명동예술극장은 올해 국내 초연작인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를 비롯해 10편을 공연한다. 그 중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문의 1644-2003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연극이 가능할까. 세르비아 작가가 쓴 이 작품은 환상을 통해 현실을 바꾸는 연극의 힘에 대한 오마주다. 성한 남자들은 다 전쟁터로 끌려가고 여자들과 알코올중독자뿐인 마을에 유랑극단이 들어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병훈 연출, 조영진·김명수 등 출연. 3월 5~28일.
극작가 박조열의 대표작으로 동화적 인물인 오장군을 통해 관객을 건드린다. 사랑하는 꽃분이와 어머니를 남겨둔 채 징집당한 오장군은 최전방으로 투입되기 전 발톱을 깎는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할 경우 집으로 보낼 유품이다. 꿈 같은 이야기는 잊힌 것, 짓뭉개진 것, 서글픈 것을 어루만진다. 이성열 연출, 이호재·고수희 등 출연. 4월 9~25일.
극작가 정경진의 제3회 차범석희곡상 당선작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휘말린 어느 남녀의 사랑과 인생역정을 오늘의 시점에서 돌아본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던 사연들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구태환 연출. 7월 2~15일.
한·일 합작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가슴을 울리는 펀치력을 보여준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의 신작이다. 태평양전쟁 후 한국인이나 중국인 B급 전범만 다수 희생된 역사를 오늘의 시각으로 불러낸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정의신답게 징글징글한 희극이 기대된다. 손진책 연출. 10월 1~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