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옆 골목길 그 집 앞을 거닐다

by조선일보 기자
2007.01.18 12:18:00

[조선일보 제공] 전통을 버리지 않으면서 현대적 감성과 기능을 담은 한옥이 늘고 있다. 아직은 먹고, 마시는 상업적인 공간이 주를 이루지만 점차 주택, 갤러리, 사무실까지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이런 이색 한옥은 역시 한옥 밀집지역인 서울 북촌에 제일 많지만, 혜화동 로터리 인근에 ‘한옥 동사무소’가 들어섰는가 하면, 경복궁 서편에도 새로운 감각의 한옥이 늘고 있다. 예쁜 한옥도 구경할 겸 슬슬 산책에 나서보자.

 
이 일대를 돌아보기 위한 산책로는 실로 다양하다. 개인적으로는 창덕궁 돈화문 앞에서 시작, 원서동을 거쳐 중앙고등학교 앞을 지나는 코스를 좋아한다. 그러나 ‘뉴(new) 한옥’을 보는 것이 목적이라면 사간동 미술관 거리 초입, 즉 경복궁 옆 동십자각에서 걷기를 시작하자. 이 일대 특유의 좁은 골목길이 풍기는 정취, 눈 앞에서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서울의 수려한 풍광은 덤이다.

두가헌


한옥과 양옥의 조화라는 테마가 아름답게 구현된 대표적 예다. ‘갤러리 현대’ 안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촌의 다른 건물들에 비해 비교적 역사가 오래됐다. 잘 생긴 한옥(와인바)과 20세기 초의 서양식 석조 건물(갤러리)이 마주보고 있다. 역시 시간의 깊이가 주는 느낌은 그 무엇으로도 대치될 수 없다는 귀중한 사실을 잘 알게 해주는 격조 있는 장소다.

▶와인바 겸 레스토랑·02-3210-2100·매주 일요일 휴무

사간동 한옥 골목

폴란드 대사관(구 프랑스 문화원)에서 골목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북촌 특유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나온다.

이곳에는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꽤 오래 전부터 인테리어 스튜디오 등 사무실로 사용돼 온 한옥들이 있다. 걷다 보면 막다른 골목처럼 보이지만 결국 다 연결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윤보선 고가

북촌에서 가장 크고 잘 보존된 한옥 중 하나다. 중국과 서양의 영향이 엿보이는 독특한 한옥이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한국근현대사의 주요한 인물들이 함께 모였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실내의 일부 구역은 매우 현대적으로 손을 보았다. 후손이 아직 거주한다. 행사를 위한 장소로 종종 활용되지만 평상시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는다. 현재 이 저택 주변지역에 갤러리들이 속속 생기고 있다.
▶ 관리사무소 02-732-7655

e믿음 치과

소규모 지역 의료시설과 한옥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곳이다. 두 채의 한옥을 연결하여 치과를 개원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 삼아 방문하지만 항상 친절하게 맞아주는 것이 놀랍다. 치과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가회동 1번지 빌라 단지를 향해 오르다 보면 오른쪽에 계단으로 연결되는 작은 골목길이 있는데 봄이면 주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작은 화분들을 길에 내어 놓는다. ‘좋은 동네’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 02-765-7528



가회동 31번지 일대

북촌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지역의 하나다. 가회동 1번지 빌라 단지에서 겨우 한 사람 폭의 좁은 골목을 지나면 수많은 한옥 기와지붕들이 넘실거리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다만 개인 주택이라 들어가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이 길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울 시내의 모습은 일품이다. 남산과 그 앞의 서울 시내, 그리고 북촌의 한옥이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여행자를 위한 공간 연

가회동에서 삼청동쪽으로 넘어가는 길에서는 북악산과 인왕산 일대의 장쾌한 전망이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삼청동 언덕길은 서울 구도심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이 길에서 조금 비껴난 골목에 독특한 개념의 한옥 카페 ‘연(緣)’이 있다. 일반에게 공개하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깊이 있는 건축 작품이기도 하다. 대지면적 25평 내외로 규모가 크지 않지만 매우 다양한 공간적 경험을 할 수 있다.
▶ 02-734-3009

로마네 꽁띠

한옥을 현대적 상업공간으로 활용하는 트렌드를 이야기할 때 아직도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와인 레스토랑이다. 이곳으로 가는 길에는 ‘돌층계길’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자세히 보면 자연암반을 깎아서 계단을 만든 것이다. 꼬불꼬불 따라 내려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길이 평지와 만나는 곳 길 건너편이 총리공관이며 그 벽에 바로 붙어 있는 집은 소설가 신경숙의 ‘바이올렛’에서 여주인공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삼청동에서 총리공관을 지나 청와대 앞으로 넘어오는 길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로 중 하나다. 경복궁 서쪽은 효자동 일대다. 사실상 남아 있는 골목길의 패턴으로만 보면 이 지역이 북촌 일대보다 훨씬 더 역사의 흔적을 잘 간직하고 있다. 골목 여기저기에 현대적 감성을 담은 한옥들도 보인다.
▶ 02-722-1633

건축가 서승모씨 스튜디오

‘한옥 원룸’(애초에는 외국인 부부를 위한 임대공간으로 기획)이라고 할 만한 이 한 채의 한옥으로 서승모는 매우 관심을 끄는 건축가가 되었다. 내부를 개방적으로 처리하고 마당을 올려 실내와 같은 높이로 한 것 등이 한옥이면서도 전혀 새로운 느낌을 준다. 운이 좋으면 살짝 열려있는 대문을 통해 내부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