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독한 삼성인' 화두 던졌다…위기 정면돌파 천명(종합)

by김정남 기자
2025.03.17 08:59:37

이재용, 삼성 임원 교육서 '독한 삼성인' 화두
"사즉생 각오로 위기 대처" "생존 문제 직면"
반도체·TV·스마트폰 등 경쟁사들 추격 허용

[이데일리 김정남 공지유 기자]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독한 삼성인’ 화두를 던졌다. 최근 메모리를 비롯한 반도체 사업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주력인 TV, 스마트폰 사업에서 중국의 추격을 허용하는 등 총체적인 위기에 빠지자, 질책성 메시지를 낸 것이다. 이 회장이 근래 들어 내놓은 메시지 중 가장 강도가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최근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영상 메시지를 통해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며 “경영진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은 지난달 말부터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 계열사의 부사장 이하 임원 2000명을 대상으로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에서는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과 고 이건희 선대회장 등의 경영 철학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이 회장은 이 영상을 통해 메시지를 공유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 가운데). (사진=연합뉴스)


이 회장은 또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중요한 것은 위기라는 상황이 아니라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라며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이 회장이 근래 내놓은 메시지 가운데 가장 강도가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말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에 대한 검찰 구형 직후 최후 진술에서 “최근 들어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삼성 위기론’을 처음 거론한 뒤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겠다”고 했는데, 이번 메시지는 당시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었다고 삼성 임원들은 전했다.

이 자리에서는 기술의 중요성도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그동안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 등의 언급을 통해 기술 경쟁력을 주문해 왔다.



삼성은 세미나에 참석한 임원들에게 각자의 이름과 함께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라고 새겨진 크리스털 패를 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임원은 “‘독한 삼성인’이 핵심 화두라고 본다”고 했다. 이번 세미나의 주제인 삼성다움의 복원이 곧 독한 삼성인으로의 회귀라는 것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삼성이 ‘세계 1등’이라는 자만에 빠져있다는 진단이 적지 않았다. 실제 이번 세미나에 나온 외부 인사들은 “실력을 키우기보다 남들보다만 잘하면 된다는 안이함에 빠진 게 아니냐” “상대적인 등수에 집착하다 보니 질적 향상을 못 이루고 있는 것 아니냐” 등의 지적이 나왔다고 한다.

이 회장이 고강도 질책성 메시지를 낸 것은 그만큼 삼성 사업들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삼성의 상징과 같은 반도체(DS)부문은 일제히 부진에 빠졌다. 메모리사업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지연 등으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게 세계 1등 지위를 빼앗길 처지에 놓였다. 파운드리사업부와 시스템LSI사업부는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완제품(DX)부문의 주력 사업인 TV, 스마트폰 등은 중국으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TV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23년 30.1%에서 지난해 28.3%로 하락했고, 같은 기간 스마트폰의 경우 19.7%에서 18.3%로 떨어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의 메시지는 위기를 정면돌파하겠다고 내외부에 천명한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은 이같은 상황 속에서도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를 집행했다”며 “올해도 미래 준비를 위한 투자를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인력개발원이 주관하는 이번 세미나는 임원의 역할과 책임 인식 및 조직 관리 역할 강화를 목표로 경기 용인에 위치한 인력개발원 호암관에서 다음달 말까지 순차적으로 열린다. 삼성이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하는 것은 2016년 이후 9년 만이다. 삼성은 앞서 2009~2016년 매년 임원 대상 특별 세미나를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