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연금 부실 `흉터 크게 남겠네`

by강종구 기자
2004.11.03 09:26:12

[edaily 강종구기자] 한때 미국 기업연금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확정급여형 기업연금이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다. 소리없이 사라지면 좋을텐데 미국 정부에는 막대한 재정압박을 초래하고, 미국 샐러리맨들의 노후는 더 이상 안전지대일 수 없을 전망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철강업체들이 연쇄도산하고 대형 항공사들도 파산신청 조짐을 보이거나 연금출연 중단을 선언하는 등 기업연금의 부실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아예 확정급여형 기업연금의 존속 자체가 의문시 되고 있는 상황이다. 확정급여형 기업연금은 기업이 일정금액만 출연하면 되는 확정기여형과 달리 연금의 투자위험을 기업이 부담한다. 이에 따라 연금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기업의 흑자감소나 적자확대로 직결된다. ◇ 철강 및 항공업계 잇단 파산..연금보험공사 `엄청난 손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파산기업의 기업연금 지급을 일정한도 내에서 보장하는 미국 연금보험공사(PBGC)는 심각한 재정위기에 직면해 있다. PBGC는 지난 2003 회계연도중 사상 최대규모인 112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에는 310억달러의 엄청난 추가손실을 입을 처지에 놓였다. 보험가입자중 임금수준이 높은 철강 및 항공업계의 파산으로 보험금 지급이 급증하기 때문. 향후에도 대형 항공사들의 도산이나 연금폐지가 이어질 경우 PBGC는 연방정부의 지원이 없는 한 파산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유나이티드에어라인사는 기업회생을 위해 연금출연 중단을 선언했다. 추후 기업연금 폐지가 예상돼 PBGC뿐 아니라 미국 의회와 백악관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 델타에어라인도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에 이어 파산신청을 할 것으로 알려져 각 항공사들의 확정급여형 기업연금 폐지가 관심사로 대두한 상황이다. ◇ 연금부채 떠넘기기..5000만달러 보험료에 64억달러 지급할 지경 연금 가입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도 이만저만 골칫거리가 아니다. 기업들은 연금자산의 수익률을 낙관적으로, 비용을 비관적으로 추정해 자산을 부풀리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PBGC의 손실로 다가오고 있다. 또 연금 건전성에 관계없이 보험료가 동일한 점을 악용, 연금부채를 보험공사에 떠넘기는 행위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유나이티드에어라인사의 경우 고작 5000만달러의 보험료를 납부했지만 연금이 폐지되면 PBGC는 총 64억달러를 부담해야 한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와 PBGC 등이 감독을 강화하고 공시를 강화하는 등 서둘러 개혁에 나서고 있으나 확정급여형 연금의 사양화 흐름은 이미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비용도 적게 들고 투자손실이 발생해도 기업손익에 영향이 없는 확정기여형이나 장기 근속자의 경우 연금적립률이 낮아져 최대 50%까지 줄일 수 있는 현금기준(cash-balance) 기업연금을 선호하고 있다. ◇ 확정급여형 `역사의 뒤안길`..재정부담 증가 및 노후불안 등 후유증 심각 1985년 11만4000개에 달하던 확정급여형 기업연금은 올해 3만1000개로 대폭 축소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현금기준 기업연금으로의 전환 금지를 철회하면서 시티그룹, AT&T 등 포춘 1000대 기업 및 월드뱅크(WB) YWCA 등 대다수 기관이 전환하고 있다. 특히 철강, 자동차 등 확정급여형을 채택하고 있는 전통적인 대기업들은 연금부담 때문에 경쟁에서조차 뒤쳐질 수 있다며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 세계 1위 자동차회사인 GM사의 경우 연금부채가 무려 630억달러로 시가총액 300억달러의 2배가 넘는다. 미국내 최대 조제약 구매자이며 자동차 한대당 연금 및 의료비용이 1360억달러로 경쟁사인 혼다의 107달러에 비해 12배에 달한다. 또한 출산율저하와 베이비붐 시대의 은퇴가 임박하면서 확정급여형 기업연금의 부양능력, 즉 근로자대비 퇴직자 비율은 1대 1에 근접하고 있다. 샐러리맨들 역시 20년 가량 장기근속해야 연금수급이 확정되는 확정급여형보다는 직장을 옮길때 연금도 같이 이동하는 401K 등 확정기여형을 선호하는 추세다. 그러나 확정급여형 기업연금의 부실은 상당한 후유증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말 현재 민간부문에서만 적립부족액이 3500억달러에 달해 정부의 부담이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대형항공사의 파산등이 이어지면 PBGC의 구제에 나서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퇴직자의 노후는 더욱 불안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금기준 기업연금으로 바꾼 경우 당장 연금수입 감소를 피할 수 없다. 또 확정기여형으로 바꾼 경우에는 연금자산에서 투자손실이 발생할 경우 고스란히 퇴직자 부담이 된다. 이에따라 미국 노년층의 수입은 불안해지고 소득감소로 인한 소비감소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