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시진핑 이어 트럼프까지…다시 돌아온 '스트롱맨'의 시대
by방성훈 기자
2024.07.21 13:57:04
[글로벌스트롱맨] 세계를 리드하는 강항 지도자들
트럼프 재집권시 세계 정치·외교·안보 지형 격변 예상
세계 지도자들 대응 채비…바이든 외면·트럼프 줄대기
한국·유럽·대만 시험대…사우디·이스라엘·헝가리 환영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강력한 지도자가 세계 정세를 주도하는 ‘스트롱맨’ 시대가 다시 도래하고 있다. 현대판 ‘차르’라고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 황제’로 불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당선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서다. 중국·러시아가 미국에 맞서 사실상 세계 정치·안보 지형을 양분하고 있는 가운데, 다른 국가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려면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질 전망이다.
| 도널드 트럼프(왼쪽) 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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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브루킹스연구소 등에 따르면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한국, 영국, 독일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가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반면 아르헨티나, 사우디아라비아, 헝가리의 지도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를 환영할 것으로 예상된다. 멕시코, 우크라이나, 중국은 잠재적 격변, 미국과의 추가 단절에 대비해 벌써부터 채비를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NYT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 후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고, 세계 지도자들은 이를 지켜보며 포퓰리즘적·고립주의적인 성향을 재확인했다. 각국 지도자들은 그의 외교 정책에 대비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가장 먼저 변화가 예상되는 것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교 정책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9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며 재선에 성공하면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양쪽(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이 함께 폭력을 끝내고 번영을 향한 길을 닦는 협상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과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칭찬하며 호감을 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방향으로 전쟁이 종료되긴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전쟁이 계속되더라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강력 비판해온 만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대폭 축소되거나 끊길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는 다른 서방 국가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달 초 개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는 수많은 유럽 국가 지도자, 장관, 고위 공무원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 및 외교 책사들과 회동을 가지며 ‘줄대기’에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나토 지도자들은 미국이 탈퇴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피격 사건 직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에 재감염됐을 때 세계 주요 지도자들의 쾌유 메시지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몰린 것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연출됐다.
한국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방위비 증액을 요구할 것으로 보고 주한미군 유지비 분담 특별협정(SMA)을 마무리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8일 “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잘 지냈다. (백악관에) 돌아가면 (앞으로도) 잘 지낼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최근 대만과 관련해서도 방위비를 내야 한다고 주장해 파장을 일으켰다. 대만을 자국 영토로 보고 있는 중국은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했다. 대만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은 더욱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멕시코는 미국에서 추방될 수 있는 수백만명의 불법 이민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고심하고 있으며, 아제라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영토 분쟁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아제르바이잔은 2020년 9월 아르메니아와 44일 간 전쟁을 치렀는데, 트럼프 전 정부는 사실상 이를 용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과거 집권했을 때에도 미국 우선주의·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 정치·안보 지형을 바꿨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유럽은 물론 중남미까지 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급부상했다. 지금은 물러났지만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선출됐던 것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 세계 정치·안보에서 각자도생 성격이 더욱 짙어지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동시에 견제하거나 최소한 대응이 가능한 지도자가 인기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지난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이 연임에 성공한 것도 이러한 인식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유럽은 과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같이 구심점 역할을 하는 강력한 지도자가 없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한때 후계자로 지목됐지만, 프랑스 내부에서조차 극우·극좌에 밀려 통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연임에 성공해 한숨을 돌렸으나, 미국에 맞서 새로운 정치적 중심축이 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이미 강력한 지도자를 보유하거나 트럼프 전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국가들은 그의 복귀를 환영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데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미국으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얻었던 만큼 그의 재선을 반기는 분위기다. 사우디 역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때부터 직접 전화통화를 하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시 이스라엘과의 수교도 다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동유럽의 트럼프’로 불리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도 오랜 기간 트럼프 전 대통령과 친분을 과시해 왔다. 그는 우크라이나, 중국, 러시아에 이어 지난 11일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회동하며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의 ‘키맨’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NYT는 “2022년 총격으로 숨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미국의 방위비 요구에 대한 직접적인 대립을 피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며 “이런 접근법을 활용하려는 국가가 이미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