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식 추기경, 공식 서임…한국 가톨릭 역사 새로 썼다

by이윤정 기자
2022.08.27 23:47:53

27일 바티칸에서 서임식 마쳐
한국 네 번째 추기경 탄생
향후 10년간 교황 선출권 가져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유흥식 라자로(70)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이 추기경에 공식 서임되며 한국 가톨릭의 역사를 새로 썼다.

유 추기경은 27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19명의 성직자와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 속에 서임식을 마치고 정식으로 로마 교회 추기경단의 일원이 됐다.

27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열린 추기경 서임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왼쪽)이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에게 추기경의 상징인 비레타를 씌워준 뒤 격려하고 있다(사진=AP연합뉴스).
서임식은 입단송으로 시작해 신임 추기경 대표가 전체의 이름으로 교황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말을 하고, 교황의 기도가 이어졌다. 이후 복음 봉독, 교황의 훈화와 함께 본격적인 추기경 서임 절차가 시작됐다.

교황은 추기경에 임명된 이들을 ‘전능하신 하느님과 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와 교황의 권위로’ 거룩한 로마 교회의 추기경에 서임할 것을 선포했다. 새 추기경들은 신앙 선서와 충성 서약을 한 뒤 서임 순서에 따라 한 명씩 교황에게 나아가 무릎을 꿇고 빨간색 비레타(사제 각모)와 추기경 반지를 받았다.

유 추기경은 영국의 아서 로시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로 호명됐다. 그는 빨간색 비레타와 추기경 반지를 받고 교황과 잠시 웃으며 대화한 뒤 포옹했다. 추기경 품위의 상징인 비레타는 아래는 사각형이고 위쪽에 성부·성자·성령의 ‘삼위(三位)’를 상징하는 세 개의 각이 있다. 빨간색은 순교자의 피를 상징하며 추기경 반지는 존엄성을 뜻한다.

교황은 신임 추기경들에게 로마의 성당 하나씩을 명의 본당으로 지정하는 칙서도 전달했다. 유 추기경은 로마에 있는 ‘제수 부온 파스토레 몬타뇰라’(착한 목자 예수님 성당)를 명의 본당으로 받았다.

유 추기경은 서임식 뒤 한국 취재진과 만나 “교황님께서 ‘앞으로 함께 나아가자’고 말씀하셨다”면서 “그래서 ‘교황님과 교회를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셨다”고 전했다. 이어 “‘교황님과 교회를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은 교황님에게 편지를 쓸 때 내가 항상 쓰는 표현”이라며 “죽을 각오로 추기경직에 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 추기경의 서임으로 한국은 총 4명의 추기경을 배출하게 됐다. 유 추기경은 선종한 김수환 스테파노(1922∼2009)·정진석 니콜라오(1931∼2021) 추기경, 염수정 안드레아(78) 추기경에 이어 한국 가톨릭교회의 네 번째 추기경이다.

추기경은 가톨릭 교회의 교계제도에서 교황 다음의 권위와 명예를 가진 지위로 기본적으로 종신직이다. 전 세계의 모든 추기경이 소속된 추기경단은 교회법상 교황의 최고 자문기관의 역할을 한다.

새 추기경 20명이 탄생하면서 전 세계 추기경은 226명으로 늘었다. 새 교황 선출권은 80세 미만 추기경에게만 주어진다. 교황 선출권을 지닌 추기경은 이번 서임식을 통해 132명이 됐다. 우리나라는 염수정·유흥식 추기경 2명이 향후 교황 선출회의(콘클라베)에 참여할 수 있어 한국 가톨릭교회의 위상이 높아질 전망이다. 염 추기경은 만 80세가 되는 내년 12월까지, 유 추기경은 향후 10년간 투표권이 있다.

대륙별로는 유럽이 53명으로 가장 많고 아시아(21명), 아프리카(17명), 북아메리카(16명), 남아메리카(15명), 중앙아메리카(7명), 오세아니아(3명) 순이다.

유 추기경은 195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1979년 로마 유학 중 사제 서품을 받았고, 1983년 로마 라테라노대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전가톨릭대 교수와 총장을 지냈고 2005년 대전교구 교구장이 됐다. 지난해 6월에는 전 세계 사제·부제의 직무를 관장하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에 한국인 최초로 임명돼 대주교로 승격했다. 교황청 장관은 관례상 추기경이 맡아왔기 때문에 유 장관의 추기경 임명은 일찌감치 예견됐다.

추기경 복장을 완전히 갖춘 유 추기경은 29∼30일 교황이 주재하는 추기경 회의에 참석하며 추기경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서임식을 마친 뒤 활짝 웃는 유흥식 추기경(사진=AP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