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사장의 性이야기]⑦개성 넘치는 세계의 성인용품점들
by채상우 기자
2016.01.22 08:46:57
[최정윤·곽유라 플레져랩 대표] “혹시 섹스토이를 보거나 사용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성인용품 구매 문의를 해오는 고객들에게 필수적으로 묻는 말이다. 어떤 답변이 나오느냐에 따라 그 상담의 진행 방향이 달라진다. 대부분 이들이 한 번도 성인용품을 사용해보지 않았다고 답하지만, 이따금 구입해 봤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섹스토이 유경험자들은 보통 온라인으로 사 봤거나, 해외 체류 중 현지 성인용품점을 구경해 본 경우가 많다. 인기 있는 여행지인 일본이나 미국, 유럽 등지에선 도심의 한가운데서 섹스토이샵을 쉽게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적지 않은 수의 오프라인 성인용품점이 있지만, 손으로 꼽히는 몇 군데를 빼면 편하게 방문할만한 곳이 많지 않은 실정이다.
플레져랩을 운영하는 우리도 가장 긍정적인 섹스토이샵 경험은 국내가 아닌 국외에서였다. 곽 사장의 경우 미국 여행을 하다 ‘쉬밥(Shebop)’이라는 오리건의 유명한 섹스토이샵을 방문했는데, 호기심으로 가볍게 찾은 그곳에서 문화 충격을 받았다. 넓은 통유리에 따뜻하게 비쳐 들어오는 자연광, 깔끔한 인테리어로 꾸민 매장엔 귀여운 바이브레이터부터 고급 가죽 제품, 특이하고 매니악한 물건들까지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매장 내 게시판엔 쉬밥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월별 교육 프로그램 안내가 붙어있었는데, 수업은‘섹스토이의 기쁨’부터 ‘오럴섹스 하는 법’까지 다양했다. 그다음부턴 여행을 갈 때마다 그 도시의 성인용품점을 방문하는 것을 하나의 테마로 삼았다. 가깝게는 대만과 싱가포르, 멀게는 호주와 미국 서부, 동부 등지에서 지속해서 좋은 경험을 하는 한편, 왜 국내에는 해외처럼 누구나 맘 편히 방문할 수 있는 세련된 섹스토이 매장이 없을까 아쉬워했다. 이런 니즈가 결국 플레져랩 창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나의 경우 대학 시절을 보낸 시애틀에서 생전 처음으로 성인용품점을 방문했다. ‘베이브랜드(Babeland)’라는 여성 친화적인 섹스토이샵이었는데, 정말 흥미진진한 곳이었다. 우연히 가게 앞을 지나다 한눈에 확 들어오는 노란색 외관, 핫핑크색 간판을 보고 컵 케이크 샵인 줄 착각하고 들어갔었는데, 실제 무얼 파는지 알고 나서 깜짝 놀랐었다. 어쨌든 들어간 김에 이것저것 구경해봤는데, 여성 스텝들은 내 질문에 친절한 미소와 자신 있는 태도로 답변하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나 말고도 다른 손님들이 몇 있었는데, 주위를 힐끔거리거나 남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골똘히 섹스토이에 몰두해 물건을 들었다 놨다 가늠해보고 있었다. 결국, 나는 직원이 추천한 바이브레이터를 샀는데, 그녀의 자세한 설명 덕분인지 첫 섹스토이로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었고, 이후에도 그 가게에 자주 놀러 갔다.
다니던 대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에로틱 베이커리(Erotic Bakery)’도 성인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었다. 설탕 반죽으로 만든 남성, 여성의 성기를 케이크과 쿠키에 올려 판매하는 제과점이었는데, 섹스를 테마로 한 위트있는 파티용품 역시 판매했다. 케이크에 올라간 남녀의 신체 부위는 인종과 크기별로 다양했고, 곱슬곱슬한 체모 역시 구멍이 좁은 짤주머니로 짜낸 크림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재미삼아 친구 생일 선물로 남성의 성기가 우뚝 솟은 케잌을 샀는데, 계산대에서 여직원이 “페니스에 cum(정액의 속어)을 뿌려드릴까요?” 하고 물어봐서 깜짝 놀랐었다. 이내 질문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소스 병을 흔들어 끈적한 설탕 시럽을 성기 위쪽에 뿜어나오는듯이 뿌렸다. 잊을 수 없는 생일 케이크가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음이다.
플레져랩을 창업하고 비즈니스 미팅차 방문했던 샌프란시스코는 그야말로 섹스토이샵의 성지였다. 1977년부터 영업해온 지역의 터줏대감 성인용품점, 굿 바이브레이션즈는 도시 내 여러 매장을 두고 있었고, 한 지점엔 바이브레이터의 역사를 보여주는 무료 박물관도 있다. 그 외에도 BDSM(속박 플레이 및 피학-가학 성행위)마니아들을 위해 고품질 가죽 제품을 대대적으로 취급하는 곳을 포함, 다양한 섹스 판타지를 위한 물건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 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유럽은 어떨까? 대표적인 유럽의 섹스토이 체인이자 프랑크푸르트 주식거래소에 상장된 ‘베아테우제(Beate Uhse)’는 현재 유럽 10개국에 200개 이상의 지점을 두고 있다. 오랜 섹스토이 판매와 제조의 역사를 지닌 유럽에선 생애 성생활사이클을 고려한 매장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일본 역시 성인용품의 다양성으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곳이다. 동경의 최대 전자상가인 아키하바라에는 아예 성인용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상가 건물들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에무즈(M‘s)는 무려 8층짜리 상점이다. 섹스토이의 다이소와 같은 이 공간에선 성인용품은 물론, 다양한 코스튬 및 하드 포르노까지 개인의 성적 취향을 위한 쇼핑을 마음껏 할 수 있다.
여러 유명 성인용품점을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결국 그 상점이 자리한 지역사회의 섹스에 대한 태도가 가게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섹스를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이자 유희로 여기는 사회에서 만난 성인용품점은 분위기가 밝았고, 유머와 위트가 묻어났다. 남성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사회에서는 남성의 판타지 위주로 채운 가게가 주류를 차지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오랫동안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각종 성인용품의 수입이 금지됐던 사회에선 개인이 자신의 성을 탐험하도록 장려하는 섹스샵이 아직 커뮤니티 일부로 자리 잡지 못했다. 국내에서도 서서히 섹스토이 담론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이때, 올해는 한국에도 성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과 다양한 물품을 제시하는 상점이 더 많이 생기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