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넷플 제국의 공습이 던진 숙제
by윤기백 기자
2025.12.15 06:00:00
[이데일리 윤기백 기자]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BD) 인수 추진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콘텐츠 업계에 묵직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단순한 기업 결합을 넘어,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주도권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제작과 유통을 넘어 영화·스트리밍 산업 전반을 지배하는 초대형 플랫폼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콘텐츠 산업이 협상 주체가 아닌 넷플릭스의 하청기지로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한국 콘텐츠 산업은 이미 그 경계선에 서 있다. 콘텐츠 수출액은 지난 10년간 3배 이상 늘었지만, 상당 부분은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를 통한 간접 수출이다. 작품은 한국이 만들고 흥행도 한국 콘텐츠가 이끌지만, 지식재산권(IP)과 유통권은 플랫폼에 축적된다. 외형적 성장과 산업 내부의 체력이 엇갈리는 구조다.
이 구조를 끊어내기 위해 가장 먼저 움직여야 할 주체는 정부다. 제작 지원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IP 귀속 구조와 플랫폼의 재투자 의무 등 시장의 기본 규칙을 손보는 단계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유럽과 일본이 이미 선택한 방향이다. 토종 OTT 육성 역시 선언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자본·세제·금융을 결합한 산업 전략으로 재정비하지 않으면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제작사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단기적인 제작 물량 확대에 안주하기보다, 불리하더라도 IP를 남길 수 있는 계약 구조와 공동 제작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은 K콘텐츠 수요가 높아 “그래도 팔린다”는 논리가 통하지만, 수요가 꺾이는 순간 플랫폼의 선택을 받지 못한 제작사는 시장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의 인수가 성사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인수전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한국은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잘 만드는 파트너’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IP와 유통 주도권까지 함께 쥔 산업으로 진화할 것인지다. 선택을 미루는 사이, 시장의 구조는 이미 한국의 의지와 무관하게 재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