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넘긴 마크롱표 연금개혁…내각 불신임안 부결

by박종화 기자
2023.03.21 08:52:56

하원 내각불신임 투표 모두 부결…한숨돌린 마크롱
1차 투표선 9표차로 고비 넘겨…여당 반란표 부담
반대시위도 지속…정유업계 파업에 주유소 기름 동나
佛정부 개혁 강행의지…총리 "변화에 전력 다할 것"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연금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내각 불신임 결의안이 부결됐다. 연금개혁을 안착시키기 위한 첫 번째 고비는 넘긴 셈이다. 하지만 연금개혁을 반대하는 시위가 진정되지 않고 있어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20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 등에 따르면 프랑스 하원이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이날 상정한 내각 불신임 결의안 두 건이 모두 부결됐다. 첫 번째 투표에서 278명이, 두 번째 투표에선 94명이 각각 찬성표를 던져 과반(287석)을 넘기지 못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16일 긴급법률제정권(하원 표결 없이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법률을 제·개정할 수 있는 권리)을 사용해 연금개혁을 강행하자 프랑스 야권은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내각 불신임을 추진했다.

내각 불신임 결의안이 부결되면서 마크롱표 연금개혁은 첫 번째 고비를 넘기게 됐다. 여당인 르네상스 소속 야엘 브라운-피베 하원의장은 표결 이후 “내각 불신임 결의안이 두 건 모두 부결된 건 의회가 연금개혁을 승인했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1차 투표에서 여권 내에서도 반란표가 나온 데다 과반에 불과 9표 부족했다는 점 등은 마크롱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진단이다. 야권은 헌법위원회(한국의 헌법재판소 격) 제소 또는 국민투표 회부를 검토하고 있으나 성사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가장 큰 난관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연금개혁 반대 시위다.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개혁은 현재 62세인 정년을 64세로 연장하고, 연금 상한액 수령시 필요한 근로기간을 42년 이상에서 43년 이상으로 늘리는 게 핵심이다. 이에 근로기간이 늘어나는 청년층과 장기간 근로에 불리한 육체 노동자, 경력단절 여성들의 반대 여론이 특히 크다.

이날도 파리와 보르도, 리옹 등 프랑스 주요 도시 곳곳에선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진압을 시도했고, 시위대는 쓰레기 더미에 불을 지르며 맞섰다. 르피가로에 따르면 이날 파리에서만 시위대 140여명이 체포됐다.

정유업계와 청소 노동자는 파업으로 연금개혁에 항의하고 있다. 일부 정유공장에서는 제품 공급을 일부 제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체 주유소 가운데 약 8%에서 유류가 부족한 것으로 프랑스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프랑스 노동계는 오는 23일 연금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을 단행할 계획이다. 프랑스 최대 노조인 노동총동맹(CGT)의 카멜 브라흐미는 프랑스24 방송에 “(파업 목표는) 이 부당하고 잔인하며 쓸모없고 비효율적인 법(연금개혁안)을 통과시키려는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연금개혁 반대 시위가 마크롱 정부를 정치적 위기에 몰아넣었던 2018년 노란조끼 시위(유류세 인상 반대 시위)처럼 대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프랑스 정부는 연금개혁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매년 100억유로(약 13조원)에 이르는 연금적자를 줄이고 고령화로 둔화하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선 연금개혁이 필수라는 게 마크롱 정부 생각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21일 정부 각료·여당 의원 등과 만나 후속조치를 논의할 예정이다.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는 내각 불신임 투표 직후 “나는 필요한 변화를 계속 일으키고 시민 기대에 부응하는 데 장관들과 함께 모든 에너지를 쏟기로 결심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