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맛보기] ‘대세론’ 문재인 vs ‘동네북’ 문재인
by김성곤 기자
2017.01.14 12:00:00
[한국갤럽] 다자구도 - 문재인 31%, 반기문 20%, 이재명 12%, 안철수 7%.
[한국갤럽] 3자구도 文 44%·潘 30%·安 14%…양자구도 文 53% vs 潘 37%.
[리얼미터] 호남, 文 40.6%·李 16.3%·潘 9.3%·安 8.1%…문재인, 총선악몽 탈출
[리얼미터] 호남, 민주 50.2% vs 국민 21.7%…20대 총선과 정반대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바야흐로 ‘문재인 대세론’입니다. 여야 차기 주자 지지율을 살펴보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독보적입니다. 한국갤럽의 1월 2주차 주간집계(1월10~12일, 표본오차 95% 신뢰도에 ±3.1%포인트)를 예로 들면 문재인은 다자구도는 물론 문재인·반기문·안철수 3자 가상대결과 문재인 vs 반기문 양자대결 구도에서 모두 우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재인은 확장성의 한계 때문에 대선필패 카드라는 야권 일부의 부정적 인식을 무색케 만드는 결과입니다. 문재인은 한마디로 동네북입니다. 여야 모두 문재이 때리기에 집중합니다.문재인을 꺾지 않고서는 차기 대선이 힘들다는 인식입니다. 여권은 대통령 탄핵 이후 분당사태를 겪으며 집안단속이 우선이지마 문재인에 대한 공세는 여전합니다. 비문 주자와 국민의당의 비판은 더 거칠고 날카롭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문재인이 가장 유력합니다.
문재인은 과연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요? 87년 이후 역대 대선을 돌이켜보면 묘한 법칙이 두 가지 있습니다. 대선승리에는 15년 정도의 고생이 필요하다는 것과 대선 본선에 출마했다가 패배한 후보는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법칙입니다. 역대 대선 승자는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린 이후 15년 가량의 정치풍파를 경험했습니다. 또 대선에서 패배했던 후보가 다음 대선에서 재기해서 승리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예외는 87년 대선에서 실패했다기 이후 차례로 대권을 거머쥔 김영삼(YS)·김대중(DJ) 두 사람뿐입니다. 두 사람은 1950년대 중반 정치입문 이후 대선승리까지 40년 안팎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1970년 신민당 경선 당시 40대기수론 이후로만 따져도 각각 22년과 27년의 세월이 더 걸렸습니다.
◇문재인 대세론 활활…‘호남패배시 정계은퇴’ 발언 악몽서 탈출
연초 수많은 언론사들이 차기주자 선호도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승자는 단연 문재인이었습니다. 다자구도는 물론 반기문·안철수와의 가상대결에서도 거의 대부분 승리를 거뒀습니다. 탄핵정국에서 지지율 수직상승으로 문재인을 위협했던 이재명 성남시장도 급등세를 마감했습니다. 문재인이 가장 유력한 차기주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것이었습니다. 더 고무적인 현상은 최근 호남의 지지율 흐름입니다.
20대 총선 이후 호남은 문재인의 가장 약한 고리였습니다. 특히 총선 유세 도중 ‘호남패배시 정계은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가 혹독한 비판에 시달렸습니다. 총선 결과 호남을 싹쓸이한 것은 국민의당이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당시 야권 심장인 광주에서 단 한 석도 건지도 못했습니다. 광주·전남북 전체 28석 중 국민의당 23석, 민주당 3석, 새누리당 2석으로 나타났습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더 처참했습니다. 지역구 선거 정당별 득표율은 광주(국민 56.3% vs 민주 34.1%) 전남(국민 43.8% vs 민주 38.1%) 전북(국민 42.2% vs 민주 38.8%)였습니다. 비례대표 득표율 역시 광주(국민 53.3% vs 민주 28.6%) 전남(국민 47.7% vs 민주 30.1%) 전북(국민 42.8 % vs 민주 32.3%)입니다. 그야말로 국민의당 압승입니다.
그러나 총선 이후 9개월 만에 모든 게 정반대가 됐습니다. 리얼미터 1월 2주차 주중집계(1월 9∼11일,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5%p)에 따르면 문재인의 호남지역 차기 지지율은 40%를 넘어섰습니다. 총선 당시 경쟁했던 안철수보다 5배 이상 높습니다. 정당 지지율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50%를 넘어섰습니다. 국민의당은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3일 오전 서울 합정동 신한류플러스 프리미엄라운지에서 열린 ‘함께 여는 미래 18세 선거권 이야기’ 간담회에서 청소년들과 학부모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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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문재인만 때린다”…여야 ‘문재인 난타’ 오월동주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친북혁명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 마치 민중혁명가를 만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김문수 전 경기지사)
“아직까지 UN대북인권결의안 북한결재 의혹사건에 대해 해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사드배치와 개성공단 문제도 북한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있다.”(정용기 새누리당 원내수석대변인)
“문재인의 안보관과 대북관이 불안하다. 대통령이 되면 많은 국민들께서 정말 굉장히 불안할 것이다.”(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제2의 최순실의 그림자가 문재인 전 대표의 주변에 어른거린다는 얘기가 나온다”(정병국 바른정당 창당추진위원장)
“민주당 개헌보고서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보고서로 착각이 들 정도다. 집권을 하면 제2의 박근혜 대통령이 될 것 같다.”(박지원 전 국민의당 원내대표)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이끌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으로 대변되는 패권주의와 무책임한 집단 역시 청산해야 한다,”(조배숙 국민의당 정책위의장)
“대세는 깨지기 위해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세가 유지돼 지켜진 사례가 별로 없다.”(이재명 성남시장)
“모든 선거를 졌고 당도 쪼개졌다. 호남분열과 당의 패권적 운영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람이 다시 나선 것은 말이 안된다.”(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대세론이 너무 강력해서일까요? 문재인은 매일매일 얻어터지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시 혁명 발언과 민주당 개헌보고서 파문이 대표적입니다. 여야 지도부와 대변인단은 융단폭격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목적은 뚜렷합니다. 여권은 정권재창출의 가능성을 엿보기 위해 문재인 견제에 전력투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당과 비문진영 주자들의 공세는 더욱 날카롭습니다. 문재인을 꺾지 않고서는 야권의 대표주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야권의 공세는 문재인 대세론이 허구라는 것입니다. 2012년 대선은 결코 야당이 패할 수 없는 선거였는데 문재인의 확장성 부족 때문에 졌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전교 1등이지만 서울대를 못간다”는 논리입니다. 문재인 대세론은 2012년 대선에서 성공했던 박근혜 대세론이 아니라 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에서 패배했던 이회창 대세론과 닮은꼴이라는 것입니다. 대통령 탄핵으로 난파 위기에 내몰린 여권 역시 문재인을 집중 견제하고 있습니다. 반기문이라는 구원투수를 내세워 정권재창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문재인의 몰락이 전제조건입니다.
◇‘대선승리’ 노무현·이명박·박근혜 vs ‘대선패배’ 이회창·이인제·정동영
YS와 DJ를 제외하고 87년 이후 역대 대선의 승자는 대체로 정치입문 이후 15년의 고생을 경험합니다. 이른바 ‘대선승리 15년’의 법칙입니다. 15년에 너무 못미치면 산전수전을 겪지 않아 경험이 부족하다는 의미이고 15년을 너무 훌쩍 넘기면 올드한 이미지의 느낌이 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모두 대권등정까지 대략 15년이 걸렸습니다.
노무현은 1988년 13대 총선을 통해 정치무대에 등장한 이후 청문회 스타로 국민적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후 지역주의 벽을 깨기 위해 끝없이 도전했고 후보교체론, 노·정 단일화 파기 등 갖은 우여곡절 끝에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합니다. 이명박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 의원으로 국회에 들어옵니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유명했지만 재선 성공 이후 선거법 위반으로 낭인시절을 보낸 뒤 서울시장을 거쳐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합니다. 박근혜는 97년 이회창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합니다. 다음해 재보선을 거쳐 국회에 입성한 이후 2004년 17대 총선을 지휘하며 전국적 거물을 떠올랐지만 한나라당 대선경선에서 MB에 패배한 뒤 와신상담 끝에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합니다.
아울러 대선 패배를 경험했던 인사들은 재기의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이회창입니다. 97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2002년과 2007년 대선에도 나섰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습니다. 오랜 법조인 경력의 이회창은 93년 국무총리를 정치인의 시작으로 삼을 경우 97년 대선에서는 5년차 정치인에 불과했습니다. 97년 대선에 출마했던 이인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88년 총선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는데 97년 대선 때는 만 10년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는 노무현에 밀렸고 2007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도 나섰지만 득표율은 1%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2007년 대선에 나섰던 정동영 역시 대참참패를 기록한 뒤 정치적으로 몰락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정동영의 대선 도전은 96년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입문한지 11년만이었습니다.
◇차기 대선, 문재인의 운명은?
문재인의 정치인생은 15년 정도가 됐습니다. 정치인 문재인의 시작은 2002년 대선에서 부산지역 선대본부장으로 노무현 당선을 도운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맡았습니다. 전형적인 정치인은 아니지만 노무현탄핵, 이라크파병, 행정수도 이전, 대연정, 개헌, 남북정상회담 등 격렬한 정치적 격랑의 한가운데 있었다는 점에서 왠만한 정치인 못지않은 경험입니다. 실제 문재인은 참여정부 청와대 시절 극심한 스트레스로 치아 10개가 빠져 임플란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2009년 노무현 서거 이후 고민 끝에 현실정치에 뛰어들었고 2012년 실패 이후 대선재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2002년에서 20017년까지 정확하게 15년입니다. 그러나 현존 여야 차기주자 중 대선 본선에 나가본 사람도 문재인이 유일합니다. YS와 DJ를 제외하고는 대선에서 실패했던 사람이 재기에 성공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4.19혁명 이후 5.16 군사쿠데타 △80년 서울의 봄 이후 신군부의 집권 △87년 6월 항쟁 이후 노태우 당선…. 우리의 현대사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듯하다가 뒷걸음질 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2017년 촛불혁명의 끝은 어디일까요?
대세론을 구가하는 문재인의 성공 가능성은 반반 정도로 여겨집니다. 여권의 분열과 자중지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야권 지지층의 문재인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면 50% 이상으로 가능성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선구도가 분권형 개헌을 고리로 ‘문재인 vs 비문재인 연합’의 양자구도로 완벽히 재편되고 반기문이 “대통령 3년만 하겠다”며 임기단축을 파격적 공약으로 내걸 경우 가능성은 50% 이하로 내려가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