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재 박사 "도요타 사태, 원하청 문제로 보면 오진"

by정태선 기자
2010.04.13 09:30:56

"불공정한 원하청 개선, 정답은 신상필벌"
정부 공정한 감독관 역할 필요.."포스코·SK·LG전자 우수사례"
경영계는 주체로 나서야.."인식전환·사회적 대화 절실"

[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도요타 사태를 원하청 관계의 문제로만 해석하면 그릇된 판단될 수 있다."

지난 2004년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한 원하청 관계를 깊숙이 연구하고 일찍부터 문제를 제기해 온 노동연구원 조성재 박사의 말이다.

일본사례를 중점적으로 연구해온 조 박사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도요타 사태에 관해서 의외의 답변을 했다.

▲ 노동연구원 조성재 박사

조 박사는 "도요타 사태를 외주나 하도급 문제에서 원인을 찾는 분석이 많은데, 근본적인 문제는 기술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화된 자동차 부품은 각각의 납품업체에서 최고품질로 생산하더라도 조립해 놓으면 문제를 일으키는 `간섭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도요타 사태를 가져온 여러 이유 중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면 초점이 흐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자동차산업은 다단계 계약으로 촘촘히 연계돼 긴밀히 협력하면서 경제 상황에 따라 비용 절감을 위해 함께 노력해 왔고, 이에 따른 부담과 성과를 골고루 분배하는 `협력 체제`가 잘 구축돼 있다는 평가다.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원하청 관계를 `착취`뿐 아니라 `육성`, 양 단면 모두 살펴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장기간으로 보면 결국 규모의 경제를 이루며 경쟁력 향상에 일조하고 있다"며 "현대차(005380)가 중국에 진출하면서 부품업체들이 동반진출했고, 초기에는 위험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넉넉한 이익을 보장하다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단가인하를 요구하는 식이다. 현대차 1차 부품업체들이 2005년 86개에서 2008년 118개로 늘어난 것도 `주고받기`를 지속하면서 성장하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조 박사는 다만 "국내 자동차산업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가치생산과 배분의 전 과정이 긴밀하게 조율돼야 하는 구조라, 중소기업의 육성과 상생을 위한 대기업의 주도적 역할이 어느 산업보다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불공정한 원하청 관계를 바로잡으려면 "정부는 감독관 역할을 제대로 하고, 경영계가 우선 스스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불공정한 원하청 관계에서 정부가 해야할 역할에 대해서 한마디로 `신상필벌`로 요약했다.

조 박사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원하청 거래를 지켜보는 담당 부서가 있지만, 한때 무용론이 제기됐었다. 불공정거래 행위가 너무나 다양해서 일일이 정부가 간섭하고서 바로 잡기 어렵다. 정부는 상생협력의 원하청관계를 유지하는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주고, 불공정 거래를 하다가 적발된 기업엔 페널티를 매섭게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상생협력 모델을 발굴해서 대기업의 협조를 이끌어내고, 대기업의 우수관행과 기술이 확산되도록 독립적인 전담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 

조 박사는 포스코(005490)와 협력기업을 긍정적인 사례로 들었다. 포스코는 자체 인력을 상대 기업으로 신분 전환하는 과정에서 지식·기술·재정 부담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협력기업들이 고용관계를 순조롭게 선진화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했다. SK그룹의 `상생 아카데미`나 LG전자(066570)의 `중견인력 이동제도` 등도 우수사례로 꼽았다.

그는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한 원하청 관계를 개선해서 양질의 중소기업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나섰지만, 노동계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배경으로 "사회적 안전망이 미흡한데 정부가 `노동유연화`에 더 집착하고 있기 때문"으로 진단했다.

조 박사는 "정부가 `현대차 같은 대기업 노조가 임금인상을 관철하면, 기업에서는 그 부담을 납품업체에 전가한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이제 대기업 노조도 사회적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런데 자동차와 전자업종을 비교해 보면 전자 쪽의 상품주기가 짧고 원자재 값 등락폭이 심해서 납품업체 영업이익이 자동차보다 훨씬 적다. 무노조인 삼성전자와 협력업체 관계는 들추지 않고, 노조가 있는 현대차 같은 기업만 자주 언급하면서 정부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고 풀이했다.

일자리 문제나 원하청 관계를 해결하는 데는 무엇보다 경영계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정부는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일자리 수`와 같은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할 수 있는데, 선진국 사례를 보면 노사가 주체가 되어 20년 이상의 대화를 통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 왔다"고 지적하고, "경영계는 정부 뒤에 물러나 있지 말고 보다 장기계획을 주도적으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지난 82년 맺어진 노·사·정간 바세나르협약으로 일자리 나누기에 성공했다. 경제악화로 80년대 초 실업률이 치솟자 노동자는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대신 사용자는 근로시간 단축과 시간제 근로의 활성화를 통한 고용안정을 위해 노력한다는 협약을 맺고, 이후 실업률은 크게 낮아졌다.

조 박사는 "네덜란드 모델이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정규직 파트타이머가 많아져야 하는데, 앞서 전사회적인 획기적 인식전환과 함께 진정한 사회적 대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