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옷 입은 사찰이 동네에 숨어있다
by조선일보 기자
2009.10.22 12:05:00
[조선일보 제공] 관악산 자락이라고 하지만 영락없는 주택가다. 시장통을 지나 빌라가 늘어선 좁은 골목을 구불구불 지나 닿는 길상사(서울시 관악구 인헌동 180-2)는 오랜 기간 머릿속에 자리 잡아온 사찰에 대한 편견을 경쾌하게 배반한다.
| ▲ 길상사 정원, 도자 모자이크로 그린 미륵불. / 조선영상미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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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이 건물을 구입해 지금의 모습으로 꾸민 비구니 정위 스님은 "전통 사찰이 산에 많이 있어서 그렇지, 절이 꼭 산속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며 "사람들이 마음을 씻고 싶을 때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꾸미고 있다"고 했다. 길상사에 다가설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도자기 모자이크로 꾸민 미륵불의 벽화다. 한 손을 턱에 괴고 빙긋 웃는 추상적인 부처의 모습을 향해 네 그루 보리수가 굽어진 모습이 관악산 끄트머리 울창한 나무 아래 어우러진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안토니오 가우디(Gaudi)가 지은 성가족성당의 파격이 연상되는, 선입견을 훌쩍 뛰어넘은 현대 불교 미술의 생생한 현장이다. 3층 법당 역시 벽 전체를 흰 빛깔의 도자 모자이크로 꾸몄다. 지방을 돌며 한옥을 허물 때 버려지는 나무를 가져다 깐 마루엔 만(卍)자 모양 창틀을 통해 스며드는 햇살이 시시각각 원을 그리며 번진다. 후불탱화 없이 삼단으로 놓인 14개의 작은 불상은 사색의 희열에 빠진 듯 야릇한 미소를 품는다.
지난달 여름, 창고를 개조해 문을 연 지대방은 누구나 찾아와 책을 읽고 차를 마실 수 있는 나눔의 공간이다. 정위 스님은 "생각을 방해하지 않도록 음악을 틀지 않는다"고 했다. 이 지대방에서 11월 8일까지 '맛있는 나무 물고기 전'이 열린다. 뒷산에 쓰러진 나무, 공원을 만드느라 베어진 나무를 얻어다 솜씨 좋기로 유명한 동네 '명학이 아버지'에게 물고기 모양으로 깎아달라고 한 후 동네 미술학원 김미숙 선생님이 색색으로 정겹게 장식했다. 풍요를 상징하는 목어는 한 마리 7만원 정도에 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