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수연 기자
2009.09.15 10:07:03
<2부> 남겨진 과제들
은행 주도 구조조정 태생적 한계
중소기업 `지원 우선` 잠재부실 우려 여전
[이데일리 김수연기자] 연초 서슬 퍼렇던 `기업 구조조정`이 하반기 들어서자 벌써 아련한 '기억 속의' 단어가 되고 있다.
이번 구조조정은 외환위기 때와는 규모나 양상이 전혀 달랐다. 부실이 위중하지만 연명할 여력은 남아 외형상 멀쩡한 기업들이 대상이었다. 이같은 초유의 `사전적` `선제적` 구조조정 실험은 당국이 채권은행의 등을 떠미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기업에 대해서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맡았다.
초기에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결국 수술을 하는 것도, 안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구조조정으로 마무리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지방건설사 등의 국지적인 부실은 꾸준히 발생할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금리가 오를 경우 중소기업이 줄도산 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계속 일고 있다.
"MF 이후 대기업들이 은행돈을 쓰지 않게 되면서 갑과 을이 바뀌었다" 은행 임원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거액의 돈을 빌려다 쓰는 큰 손 고객인 대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채권금융기관 주도의 구조조정은 그래서 처음부터 한계가 뚜렷했다. 금융당국은 "평가를 엄정하게 하지 않는 은행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고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은행을 움직이게 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가장 먼저 건설사에 대한 신용평가가 실시됐지만, 당시 B등급을 맞았던 신창건설이 두달만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역시 B등급이던 현진 역시 최근 법정관리행으로 귀결됐다.
구조조정이 부실자산 처리형과 기업구조 개선형이 있다면 은행 주도의 구조조정은 부실자산 처리형일 수 밖에 없다. 은행들은 부실을 피하기 위해 단기 채권회수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 채권은행은 선제적 구조조정이나 경영자원의 비효율적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기업을 감시·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테면 약정에 명기될 여러 규정을 제3자에 의해 입증 가능한 형태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법원이나 감독 당국 등에 약정의 사본을 비치해 원활히 이행되지 않을 경우 비치된 약정의 내용을 참조해 이행을 강제·촉구하는 방식이다.
구조조정 대상은 기업이 아니라 금융회사라는 지적도 있었다. 지금은 총리후보자가 된 정운찬 교수가 지난 4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당시 그는 "지금은 실물기업보다 금융기업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당시 정 교수는 "기업과 달리 은행은 몸집 불리기에만 치중해왔다. 문제는 자산 확장이 편법으로 이뤄졌고 도덕적 해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도 똑같은 부실이 생길 수 있다"며 "미국발 금융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금융기업의 방만한 경영에 따른 과잉 팽창 때문에 어차피 우리나라에 금융 위기가 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국은 주어진 여건에서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그동안 추진한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시장 안정에 기여했다고 판단하며, 현재 여건이 외환위기 당시와는 다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기업구조조정 촉진법 등 제도적 장치가 정비돼 채권단 주도의 상시 구조조정이 가능하다"며 "경기회복 조짐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 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이 아닌 자금지원이 정책 우선순위에 있었다. `패스트 트랙` 등의 이름을 붙여 보증기관이 자금을 쏟아부어 유동성을 공급했다.
때문에 연말 중소기업발 부실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최근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부실화 가능성과 대응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작년 하반기 정부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만기연장 등 지원에 힘입어 부실이 현실화되지 않고 있으나 양해각서(MOU) 종료시점에 은행들이 부실기업에 나간 대출을 회수하거나 신규 대출을 늘리지 않으면 중소기업 부실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 위원은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크게 늘렸던 지난 2006~2007년에는 중소기업의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이 크게 악화된 시기여서 대출 부실 가능성이 컸다"며 "이 때문에 2008년부터는 부실 우려가 높은 대출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뤄졌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정부의 대출 독려로 오히려 중소기업 대출이 더 늘어나 잠재 부실도 확대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