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지영한 기자
2007.09.28 10:15:08
하이닉스 현물시장 D램 공급 중단..대만업체 한숨 돌려
하이닉스 전략 수정 배경에 궁금증 커져
[이데일리 지영한기자] 하이닉스반도체가 이달 들어 현물시장 D램 공급을 전격 중단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만업체의 숨통을 틔워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이번 조치를 두고 업계 전문가들은하이닉스의 노림수가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분석에 집중하고 있다.
하이닉스는 D램 제품의 85% 가량을 중장기 수요처인 고정거래선에 공급하고 있다. 나머지 15% 가량을 현물시장에서 판매해왔지만, 9월 들어선 현물시장의 D램 공급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세계 D램 현물시장에선 대만 등 후발업체의 제품이 5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하이닉스 제품의 비중은 대략 15% 정도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물량이다.
따라서 대만 후발업체들로선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하락 압박을 덜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만 업체들은 작년 연말께 D램 가격이 많이 오르자, D램 전망이 좋을 것으로 보고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올들어 D램 가격 폭락을 촉발, 스스로 발목을 잡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닉스가 현물시장 공급을 전격 중단하자, 업계에선 의아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최근 대만의 후발업체들이 반도체 공정 미세화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원가경쟁력이 크게 약화됨에 따라 하이닉스와 같은 선발업체들이 물량압박을 통해 후발업체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갈 것이란 관측이 많았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들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사정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대만 업체들은 더욱 상황이 나쁘다"며 "지금 상황이 지속되면 선후발 업체간의 경쟁력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는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하이닉스가 현물시장 공급을 전격 중단할 수 밖에 없었던 내부 사정이 있었을 것이란 관측도 고개를 들고 있다.
대만 업체 뿐 아니라 하이닉스 역시 D램 가격 하락에 따른 원가부담이 커져 후발업체들을 몰아칠 체력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또 하나는, 현물시장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경우 결과적으로 고정거래가에 악영향을 크게 미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실제 고정거래 가격은 시시각각 변하는 현물가격의 영향을 받고 있다. 하이닉스 제품만을 기준으로 하면, 생산비중 15%에 불과한 현물가격이 85%에 달하는 고정거래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다. 마치 꼬리(현물시장 가격)가 몸통(고정거래 가격)을 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의 전형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닉스의 D램 원가를 1.4~1.5 달러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고정 거래가격이 1.7 달러대 이지만, 현물시장 가격이 1.3~1.5 달러 수준이어서 현물시장에서 팔아봤자 하이닉스로선 남는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란 얘기다.
하이닉스측은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하이닉스 관계자는 "(하이닉스가) 대만업체와 달리 스팟(현물)에 연연하는 회사가 아니다"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하이닉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고정거래선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이런 까닭에 현물시장 공급 물량을 고정거래선으로 돌리려 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하이닉스의 다른 관계자는 "하이닉스는 현물시장 공급을 중단하는 대신 고정거래 고객을 위한 고용량 제품의 생산 비중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후발업체와의 차별화도 시도할 것"이란 의견도 내놓았다.
한편 하이닉스의 김종갑 사장은 지난 18일 '아이세덱스 2007' 개막식에서 "최근 반도체 시황이 좋지 못한 것은 대만업체 등이 공격적으로 생산량을 늘리면서 공급이 과잉됐기 때문"이라며 "후발주자들의 시장 전략이 수정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