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자회사 배당금 완전 비과세…달러 국내 유입 촉진해야"

by이정윤 기자
2025.12.05 05:10:00

기업 해외유보금 1144억달러, 고환율 변수로…정부 고심
2년전 배당금 95%까지 비과세하자
434억 5000만달러 국내 들어와
"100% 비과세하면 효과 더 클 것"
"법·제도 손질, 투자환경 개선도 필요"

[이데일리 이정윤 기자] 국내 기업의 해외유보금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불어나면서 고환율을 더욱 자극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가 환전 독려와 정책금융 연계 등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달러 보유·해외 재투자 전략을 고수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현 제도만으로는 환류 유인이 부족하다”는 지적 속에 해외 배당금 비과세 확대 등 ‘세제 인센티브’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4일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경상수지의 재투자수익수입을 지난 1980년부터 올해 9월까지 누적 집계한 결과 1144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올해 들어 유보금 증가액은 66억 5000만달러로, 전년동기대비 59.7%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해외 자회사에서 벌어들인 배당 수익이 국내로 제대로 들어오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기업 외화예금 잔액도 3분기 월평균 918억 8000만달러로 사상 최고다. 고환율 국면에서 달러를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이익이 나는 만큼 기업의 ‘달러 쌓기’ 전략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흐름은 외환시장 공급을 줄여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를 넘나드는 상황에서도 외환시장에서는 기업들의 네고(달러 매도)가 거의 관측되지 않는다. 특히 ‘마스가(MASGA)’ 프로젝트에 참여한 조선업체들은 선물환 매도를 거의 하지 않으며, 환헤지 비율을 의도적으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기업이 환율 상승을 예상하면 굳이 달러를 시장에 내놓을 이유가 없다”며 “서학개미와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기업의 대규모 대미투자 등이 겹치면서 외환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구조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주요 수출기업들을 잇달아 만나 환전을 요청하고, 달러 과다보유 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을 차등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선뜻 움직이지 않는 분위기다.

한 대기업의 재무담당자는 “환율이 불안한 상황에서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것은 오히려 리스크”라며 “정부가 의무적 환전을 요구하지 않는 한 보유 전략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조선사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대형 조선사는 환율이 1450원을 넘어도 환 헤지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조선업계가 당분간 고환율이 이어질 것이라 보고 달러 보유를 유지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한미 양국이 체결한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또한 기업의 해외 자금 수요를 키우는 요인이다. 이 중 1500억달러는 조선 협력 투자로, 직·간접 해외투자 성격이 강해 국내로 돌아오는 달러 흐름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기업의 달러를 국내로 끌어오려면 ‘직접적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표적 방안이 해외 자회사 배당금의 비과세 범위 확대다.

2023년부터 해외에서 이미 세금을 낸 배당금은 95%까지 국내 법인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가 시행됐다. 이는 2022년 법인세법 개정의 결과로, 이중과세 부담을 크게 낮췄다. 실제로 제도 시행 이후 2023년 기업들의 해외유보금 일부가 국내로 들어오며 ‘리쇼어링(자본 유턴)’ 규모가 434억 5000만달러에 달했다.

이 같은 사례를 근거로 “95%에서 100% 완전 비과세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세수 감소 우려와 함께 혜택을 확대하더라도 환율 수준을 보고 움직이는 기업 특성상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또 5%포인트 올리는 것이라 효과가 미미할 가능성도 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세제 완화가 단기 유입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인 국내 송금 구조를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방치하는 것이 더 큰 위험이라고 강조한다. 해외유보금이 계속 쌓이고 고환율이 고착되면 외환시장뿐 아니라 국내 투자, 전체 자본 흐름에도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정부가 기업에 강제 조치를 요구하면 외부에서 ‘건전한 자본주의가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며 “기업이 스스로 국내로 자본을 들어오도록 하려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법과 제도를 손보고, 투자환경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