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채권형 랩·신탁 불건전 영업 관행 적발…"수사당국 통보'

by이용성 기자
2023.12.17 14:02:00

금감원, 채권형 랩·신탁 검사 결과 발표
자전거래 통해 고객 투자 손실 전가
투자 손실 증권사 고유자산으로 보전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금융감독원이 채권형 랩어카운트(Wrap Account)와 신탁을 통한 증권사들의 ‘채권 돌려막기’ 등 위법 행위를 적발했다. 금감원은 향후 위법행위에 대해 수사 당국에 주요 혐의사실을 통보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환매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사진=연합뉴스)
금감원은 9개 증권사에 대한 채권형 랩·신탁 업무실태를 지난 5월부터 집중 점검한 결과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상 다수의 문제점이 발견됐다고 17일 밝혔다. 앞서 금감원은 하나증권·KB증권·한국투자증권·유진투자증권·SK증권·교보증권·유안타증권·NH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 등 9개 주요 증권사에 대해 집중 검사를 진행한 바 있다.

채권형 랩·신탁 상품은 통상 3~6개월 단기 여유자금을 굴리기 위해 법인고객이 주로 가입한다. 투자금을 원활히 환매하기 위해 단기유동성 상품을 자산으로 편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증권사는 고객에게 일정 수익률을 약속하고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만기 1~3년짜리 장기 기업어음(CP) 등을 집중 편입하는 등 ‘만기 미스매칭 방식’으로 유동성이 낮은 CP 상품을 대거 편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채권 돌려막기는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자금시장이 경색해 증권사들이 환매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며 문제로 떠올랐다.

금감원이 증권사의 채권형 랩·신탁 업무실태를 점검한 결과 일부 운용역이 만기 도래 계좌의 목표 수익률 달성을 위해 불법 자전 거래를 통해 고객계좌 간 손익을 이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금감원에 따르면 A증권사는 지난해 7월부터 다른 증권사와 약 6000회의 연계·교체거래를 통해 특정 고객 계좌의 CP를 다른 고객의 계좌로 고가 매도하고 5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고객 간 전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금감원은 업무상 배임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 관련 주요 혐의사실을 수사 당국에 알렸다.



(사진=금융감독원)
또한, 일부 증권사는 랩·신탁 만기시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려워지자 대표이사 등 주요 경영진의 결정에 따라 고객계좌의 CP를 고가에 매수하는 방식으로 사후에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금감원 조사 결과 B증권사는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다른 증권사에 가입한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고객의 랩·신탁의 CP 등을 고가매수해주는 방식으로 총 1100억원 규모의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일부 증권사가 고객과의 계약으로 정한 편입자산의 잔존만기와 신용등급 등을 계약 조건을 위반하거나, 목표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동일 투자자의 랩 계좌 간 자전거래를 한 사실도 적발됐다.

금감원은 이와 같은 적발사실을 공개하며 증권업계에 랩·신탁 운용 시 편입자산의 만기 불일치 및 시장 상황 등을 충분히 고려해 리스크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이상 거래에 대한 모니터링과 내부 통제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투자자에게도 랩·신탁 계약 체결 시 증권사가 과도한 목표 수익률을 제시하는 것을 신뢰해서는 안 되고, 운용보고서 및 계좌 조회를 통해 적정하게 운용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고 전했다.

향후 금감원은 이번 검사 결과에 대한 위법행위를 수사당국에 통보하는 등 신속히 조치하고 랩·신탁 시장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운용상 위법행위로 손실이 발생한 랩·신탁 계좌에 대해서는 금투협과 증권업계가 협의해 객관적인 가격 산정 및 적법한 손해배상 절차 등을 통해 환매를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