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서가]건축가 승효상 "건축은 우리 삶의 배경이다"

by정수영 기자
2017.01.04 07:55:17

건축에 가장 필요한 것 '침묵'
요란하고 현란한 형태보다
보이지 않는 내부공간이 중요
한강변 아파트 저지선 두면
35층 높이 병풍아파트 불보듯
보여주기식 도시정책 아쉬워
연대하는 민주도시 만들어야

△승효상 ‘이로재 건축가사무소’ 대표는 “건축은 우리 삶의 배경이지 주공인이 아니다”라며 “인간의 삶이 돋보이기 위해선 건축이 요란하지 않고 침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데일리 정수영·원다연 기자] “한강변이라고 해서 반드시 35층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나요? 부분적으로는 고층화할 수 있고, 반대로 일부는 저층으로 설계할 수도 있는 거죠. 35층이란 저지선을 둔다면 모든 아파트가 똑같은 층수로 지을 텐데, 한강변을 둘러싼 35층 높이의 새 병풍이 만들어지는 꼴입니다.”

2014년 9월부터 2년간 서울시 총괄건축가를 지낸 승효상 ‘이로재 건축가사무소’ 대표는 서울시 도시정책이 못내 아쉽다. 한강변 건축물 높이를 35층 이하로 규제한 정책도 마찬가지다. 총괄건축가로 지내는 내내 그는 인문적 도시 ‘메타시티’ 필요성을 주창해왔다. 하지만 서울시가 추진하는 도시계획은 여전히 팽창의 도시, 보여주기식 거대도시를 지향하는 ‘메가시티’ 적 요소가 크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승효상의 이러한 건축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은 어떤 게 있을까. 그는 대표적으로 ‘침묵의 세계’(막스 피카르트), ‘보이지 않는 도시’(이탈로 칼비노) 두 권을 꼽았다. 승 대표는 “두 권 모두 항상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고, 타자화해야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음을 강조한 책들”이라고 소개한다.

침묵의 세계는 의사 출신 스위스 작가 막스 피카르트가 쓴 책으로, 침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한다. 침묵의 가치와 그것의 존재론적 성격, 그 깊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세상에서 참된 언어가 줄어들고 있음을 아쉬워하며 침묵 속에서 언어가 탄생했음을 각인시킨다. 그래야 참된 언어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승 대표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자신의 건축을 정립하고자 할 때였다. 그는 우리나라 현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수근 문하(‘공간’ 건축사무소)에서 15년을 지내다 대표까지 지낸 후 독립했다. 이후 자신의 건축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면서 읽은 게 바로 이 책이었다. “당시 젊은 건축가들로 구성된 ‘4·3’ 모임을 만들어 토론도 하고 심포지엄을 하면서 우리의 진정한 건축 세계를 찾자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이 책을 접하게 됐는데, 정말 큰 충격이었죠. 당시 우리 건축에 필요한 게 바로 이러한 침묵이었거든요.”

승효상의 건축에 있어 ‘침묵’은 어떻게 표현될까. “건축에서 침묵은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건물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한 요란한 형태, 이상한 형태, 현란한 색깔로 주변을 압도할 듯이 서 있으면 이건 그냥 소란이고, 공해지요. 건축은 우리 삶의 배경이지 주인공이 아니잖아요. 인간의 삶이 돋보이기 위해선 건축은 특히나 침묵해야죠. 이 책은 제 건축적 바탕을 발견하게 한 아주 중요한 책입니다.”

승효상 건축의 대표격인 무채색, 중성적 형태는 바로 이러한 침묵의 세계를 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홍준 교수의 집으로도 유명한 그의 대표작 ‘수졸당’은 마당을 중심으로 공간을 형성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는 건축이 담고 있는 침묵의 깊이를 보여준다. “건축의 본질은 공간에 있어요. 내부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죠. 벽체를 만들기 위해 건축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공간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침묵을 전제로 하는 거죠.”



침묵은 바로 보이지 않는 것과 맞닿아 있다. 승 대표가 추천한 두 번째 책 ‘보이지 않는 도시’는 건축에 있어 침묵이 어떻게 표현돼야 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이타노 칼비노가 쓴 이 소설은 마르코 폴로와 황혼기에 접어든 타타르 제국의 황제 쿠빌라이와 나누는 대화 형식이다. 두 사람의 짤막한 대화 형식을 통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묘사한다. 이 도시들은 현실의 도시가 아닌 환상적인 가상의 도시들로, 모두 55개의 도시들이 등장해 도시라는 공간이 지닐 수 있는 형태, 그리고 의미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도시의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단한 도시는 위대한 건축물, 랜드마크가 있는 곳이잖아요. 하지만 그런 위대한 건축물은 우리 삶과 관련이 없는 것들이에요. 스펙 타클한 광경은 어쩌면 우리 삶을 감추기 위한 것 아닐까요. 나의 일상과 관련이 있는 것, 그것은 이 앞의 골목길, 자주 다니는 동네 허름한 건물들이죠. ‘보이지 않는 도시’는 이런 소소한 곳에 도시의 진실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승 대표는 이런 의미에서 서울 광화문 광장 설계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다. “광화문 광장을 보면 사람들의 편의를 생각하기보다 기념비적인 광장을 만들려고 치중한 느낌이 들어요. 광장이라는 것이 길가다가 쉽게 접근해 커피 한잔 마시고 올 수 있어야 하는데, 광화문 광장은 목숨을 걸고 다녀야 하죠.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도시들은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건축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승 대표는 안타까워했다. “서울의 경우 도시 경쟁력이 6위인 반면 삶의 질은 115위예요. 이 불균형이 나타난 것은 경제성, 효율성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죠. 지금은 전 세계적인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요. 도로가 보행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게 대표적이죠.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도 그렇게 돼야 합니다. 스펙 타클한 광장을 만드는 게 아니라, 주변 건물들과 연결해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길을 만들자는 거죠. 서울역에서 남대문까지 걸어서 가게 되면 서로 연대하는 도시, 연결하는 도시, 민주적 도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승 대표는…

1952년생. 서울대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비엔나 공과대학에서 수학했다. 이후 15년간 김수근 선생의 문하를 거쳐 1989년 ‘이로재 건축가사무소’를 개설했다. 주요 건축물로는 수졸당, 수백당 등이 있다. 파주출판도시 코디네이터,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으로 활동했으며 지난 2014년에는 서울시 1호 총괄건축가로 선임됐다. 주요 저서로는 ‘빈자의 미학’,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