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에서 관능이 폭발하다.
by노컷뉴스 기자
2009.03.04 12:00:00
프랑스 추상미술 대표작가 프리츠 전시회, 학고재에서 4월 26일까지
[노컷뉴스 제공] 관능이 폭발했다. 터질듯 한껏 부풀어 오른 가슴. 화살처럼 예민하게 살아 있는 꼭지. 건드리기만 하면 활시위를 떠나갈 태세다. 맨가슴을 드러낸 무용수들이 역동적인 춤사위를 펼치는 생생한 무대 같다. 35명의 무용수들이 5명씩 7열로 늘어서 군무를 추는 것처럼.
프랑스 추상미술의 대표작가 베르나르 프리츠(BERNARD FRIZE,1949년생)의 한 작품에 대한 나의 느낌이다. 그의 작품은 다양한 색과 모양을 배열한 추상화이지만 온갖 상상력을 자극한다.
다른 한 작품은 여러 폭포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듯하다. 중국 구채구의 폭포수 같다. 그곳은 사방에서 산의 작은 굽이굽이마다 물줄기가 우렁차게 쏟아진다. 햇빛에 반사되는 폭포마다 영롱한 무지개를 이룬다. 커다란 비단 수십 폭을 펼쳐놓은 것처럼.
프리츠의 또 다른 작품 중에는 책을 쌓아놓은 형태의 작품도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장서를 지닌 독서가가 현재 보고 있는 책을 켜켜이 쌓아놓는 것 같다. 장정이 잘된 하드커버 책들로만.
그의 작품 중 전시장소인 학고재 화랑과 궁합이 잘 맞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사람 인(人)자 형의 양 갈래로 부드럽게 재껴진 커튼 같다. 분홍, 살색, 연보라 톤이 섞인 나뭇결무늬가 부드러운 실크스카프처럼 포근함을 준다. 학고재 화랑 우찬규 대표는 “이 작품에서 클림트 같기도 하고, 고흐 같기도 한 특성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우 대표는 프리츠의 작품세계에 대해 “차분하고, 고도로 세련되고, 극도로 절제된 전시”라고 평가했다.
프리츠는 이번에 전시된 작품 중 ‘커튼’이나 ‘책’을 연상시키는 작품에 대해 “작업을 할 때 그것들을 염두에 두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관객이 그렇게 본 것은 상상력의 결과이고,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가장 추상적인 것이 세상의 이미지를 가장 많이 재현한다.”고 정의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다양한 해석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일까? 그에게 추상화 작업은 철학적 사유와도 같다. 그는 “추상화를 그리는 과정이 생각의 과정을 나타내주는 방식이다.”고 설명한다.
그는“관객이 회화작품을 보면서 작업 과정 너머에 있는 의미를 되새기고 기쁨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언어로 모든 것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작가 자신의 관심을 끄는 것을 회화가 대변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프리츠는 우연성에 따라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치밀하게 계산된 우연성이다.붓을 들기 전에 작품을 만들어낼 아이디어를 구상한 뒤, 끊기지 않는 단 한 번의 붓질로 작업을 완성한다. 그의 작업에서는 완벽하게 완성된 그림보다는 캔버스에 붓을 놓았다 떼었다 하는 동작의 과정이 중요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주의 깊게 색채를 선택하고, 중첩시켜 나간다. 이렇게 중첩된 색채들은 우연적으로 브러시가 지나간 위로 솟아오른 것처럼 보인다.
프리츠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여러 명이 함께 작업해 동시에 완성한다는 점이다. 프리츠는 보조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작품에서 서로 상호작용하고 예상치 못한 잠재된 행동이 돌발하는 사태야말로 ‘과정의 매력’이라고 역설한다.
“제게 그림을 그리는 의미는 카오스(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는 것이죠.” 프리츠는 삶에서 자유를 찾는 것과 그림에서 자유를 실행하는 방식이 같다고 본다. 작가로서의 삶과 개인적 삶을 동일시하는 작가. 그에게 ‘삶은 우연이다.’ 그런 그가 추구하고 싶은 작품세계는 어떤 것일까? 그는 분명하게 답변했다. “영원성, '삶의 어려움'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프리츠 작품 전시는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화랑 본관에서 3월 4일부터 4월 26일까지 열린다. 같은 기간 학고재 화랑 신관에서는 이종구 화가의 <국토:세가지 풍경> 전시회가 열린다. 이종구 화가 전시회에서 소의 다양한 표정을 담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