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간부 출신’ 택시기사의 신바람 운전
by조선일보 기자
2007.03.16 10:14:54
[조선일보 제공] 택시기사 이원웅(51·서울 강동구 성내동·사진)씨의 차에는 명함이 40장 정도 들어 있다. 서울 시내에서 꽤 인기 있는 카페, 레스토랑, 문화공간 등의 명함이다.
손님들이 “어디 좋은 데 없느냐?”라고 물으면, “여기, 가보셨느냐?”라며 명함을 내민다. “한번은 꽃다발을 든 커플이 택시에 탔습니다. 결혼 기념일인데 저녁에 갈 곳을 못 정했다고 해서 청담동 O클럽이나 역삼동 S와인바를 소개했죠.”
이씨의 명함꽂이에는 다른 종류의 명함들이 있다. 미국인 변호사, 컨설팅 업체 팀장, 신문사 논설위원의 명함도 있다. 가끔 이씨에게 연락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다. 이씨는 그들에게 말해줄 생생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직접 현장에 가보기도 한다.
이씨는 원래 대기업 간부였다. H기업 과장이던 그는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불어닥친 구조조정 태풍에 휩쓸려 직장을 떠났다. 명퇴금으로 건축 내장재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투자금만 날렸다. 주식 투자에도 실패해 1억원을 잃었다. 그 사이, 이씨의 집은 25평 아파트에서 반지하 전셋방이 됐다.
2000년 7월 4일 이씨의 눈에 한 신문기사가 들어왔다. 전직 국회의원이 택시를 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사람도 택시를 모는데, 무슨 자존심?” 이씨는 바로 다음날부터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하루 12시간 운전, 낮·밤 교대 근무. 1년 만에 체중은 65㎏에서 55㎏로 줄었다. 택시를 몬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손님에게 짜증내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세 가지를 다짐했다. ‘항상 친절하고, 외국어를 배우고, 다양한 정보를 모으자.’
그로부터 7년간 이씨는 손님들에게 명소 정보를 주고, 일본인 관광객과는 ‘설국(雪國·일본소설)’을 이야기하고, 신문사 논설위원과 실버 문제를 토론하며 신바람 나게 택시를 몰고 있다고 한다. 오늘도 이씨는 택시에 오르는 승객을 보며 인사말을 고른다.
“어서 오세요, 웰컴, 봉주르 무슈, 이랏샤이마세, 구텐 모르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