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물` 난리…두 석학의 경고
by김미경 기자
2024.09.25 07:10:00
기후는 말한다…‘물’에 주목하라
"6000년 쌓은 수력 문명의 종말
인류, `물의 질서` 재설정해야"
플래닛 아쿠아
제러미 리프킨|408쪽|민음사
물의 세 시대
피터 글릭|488쪽|세종연구원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역대 이런 추석은 없었다. 한낮 기온이 36도 가까이 치솟는가 하면, 밤에는 열대야에 시달렸다. 19~21일 지난 주말 사이엔 기록적인 폭우가 남쪽 지방을 중심으로 쏟아지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차가 잠기고, 땅이 꺼지는 등 기상청은 “200년 만에 한 번 내릴 만한 비”라고 했다.
전 세계 상황도 다르지 않다. 폭염뿐 아니라 산불과 홍수, 태풍 등 각종 기상 이변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폴란드와 체코, 오스트리아 등 유럽 중부 국가들은 최근 최악의 홍수 피해를 겪었다. 포르투갈에선 건조한 날씨 탓에 전국에 화재(산불) 위험 경보가 내려졌다. 기상 이변이라는 전 지구적 현상은 이제 일상이 된 것이다. “올해가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란 한 국내 기상학자의 예측은 섬뜩한 경고가 됐다.
기후 위기의 시대, ‘물’의 회복력을 주창하는 두 권이 책이 나란히 나왔다. 세계적인 경제·사회사상가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의 ‘플래닛 아쿠아’(민음사)와 수자원 전문가 피터 글릭의 ‘물의 세 시대’(세종연구원)이다.
“생산성에서 재생성으로, 효율성에서 적응성으로, 금융자본에서 생태자본으로 넘어가고 있다. 일부 대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민첩한 중소기업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할 것이다.”
제러미 리프킨(79)이 새 책 ‘플래닛 아쿠아’에서 진단한 인류의 미래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리프킨은 “인류는 물의 행성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물을 길들일 수 있다는 생각은 인류의 오만”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인류가 어디서 살고, 번성할 수 있을지를 ‘물’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단언이다.
리프킨에 따르면 인류가 6000년간 건설한 수자원 인프라는 붕괴 중이다. 지난 14년간 2100만명이 기상 이변으로 이주를 택했고, 25년 뒤인 2050년엔 무려 47억명이 물부족 위험에 노출될 것이란 견해다.
리프킨은 ‘육식의 종말’(1993), ‘노동의 종말’(1995), ‘소유의 종말’(2000), ‘글로벌 그린 뉴딜’(2020), ‘회복력 사회’(2022) 등의 저서를 통해 미래 경제사회의 패러다임을 예리하게 포착해왔다. 이번 그의 관심사는 ‘물’. 지구를 ‘땅의 행성’이 아닌 ‘물의 행성’, 즉 ‘플래닛 아쿠아’라고 명명하는 게 시작이다.
그에 따르면 세계는 더는 성장과 발전이 아닌 유지와 번영에 집중할 것이고 회복과 재생에 중점을 두게 될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나타난 지 200년 만에 지구는 ‘재야생화’의 길로 가고 있다”며 “인류 중 상당수는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계속 이동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 20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채소를 고르고 있다. 이달에도 폭염이 이어지면서 배추 한 포기 소매가격이 9000원을 넘었다. 지난 19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배추 가격은 포기당 9337원으로 올랐다. 이는 1년 전과 비교하면 69.5% 비싸고 평년보다 32.7% 높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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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지구 온난화로 수권(지구 표면에 물이 차지하는 부분)이 새로운 균형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지난 6000년간 인류를 지배한 수력 문명이 막을 내리고 신유목 시대와 임시사회가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수직 경제에서 수평 경제, 중앙집권보다 분산된 가치사슬, 대기업 대신 민첩한 중소기업, 세계화에서 세방화(세계화와 지방화를 합친 말·글로컬라이제이션), 국민국가보단 생물권 거버넌스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다.
리프킨은 가만히 앉아 미래를 기다리기보다 생존을 위해 인류가 서둘러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나는 희망적이긴 하지만 순진하지 않다”며 “변화는 당장 20년 뒤에 일어날 일들이다.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대응하지 않으면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지구의 상황을 비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인간은 ‘협력하는 종(種)’이라는 생각에서다. “인류의 DNA에는 다른 생물도 번영하면 좋겠다는 공감 능력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논리다.
리프킨은 한국이 가진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 한국을 꼽은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회복한 국가 중 한국은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그 생존법을 배운 나라”라며 한국이 이같은 변화의 움직임에 서둘러 나설 것을 기대했다.
‘물의 세 시대’는 인류의 필수자원인 물을 고대부터 지속 가능한 미래까지 전면적으로 살핀 책이다. 저자인 피터 글릭은 40년 이상 기후·물·지속 가능성이라는 글로벌 문제를 연구해 온 수자원 전문가다. 2018년 과학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칼 세이건상을 받았다.
그는 책에서 현재의 물 문제를 진단하고 미래를 위한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인더스강, 티그리스강, 양쯔강 등에서 인류 문명이 발전한 시기가 ‘첫 번째 물의 시대’라면 ‘두 번째 물의 시대’는 산업혁명 이후다. 삶이 풍요로워진 반면 환경 파괴와 오염, 플라스틱 남용, 해양 오염 등으로 인류 생존에 위기가 닥친 현재 우리의 시대다. 이어 그가 제시한 ‘세 번째 물의 시대’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미래다.
저자는 “세 번째 물의 시대는 문제가 더 악화할 수도 있고, 지속 가능한 세계가 열릴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며 물의 가치를 되새겨보라고 조언한다. 인류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는 게 요지다.
과연 인류는 지속가능한 물의 시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우리는 이 소중한 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그동안 무책임하게 물을 사용해 온 인류가 마지막 선택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