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의 금융CAST]시장금리 오르는데, 코픽스는 왜 떨어졌나?
by김유성 기자
2021.05.22 11:00:00
장기채 금리 상승하는 와중에 4월 코픽스 0.02%p 하락
코픽스 결정적 변수는 은행예금 금리..낮게 유지돼
넘치는 유동성, 은행에 모이는 임시 자금→은행금리↓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대출 금리를 이해하는 주된 메커니즘은 ‘떼일 수 있는 확률’입니다. 떼일 수 있는 확률 혹은 불안감이 낮을 수록 금리는 낮게 됩니다. 이런 구조를 이해하게 되면 대출 금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미괄식 글입니다. 시간이 부족한 분들은 뒷부분 보세요)
떼일 확률을 수치화를 하거나 등급화한 게 바로 신용도입니다. 개인에게는 신용점수(1000점 만점), 기업과 국가 등 거대 조직에는 알파벳으로 표현되는 신용등급이 부여 됩니다.
돈을 잘 갚고 떼일 염려가 없어 보이는 부자들의 신용도가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돈도 없는데 대출도 안해주냐?”라고 화낼 분도 계시겠지만, 금융시장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는 기부 기관이 아니니까요.
그 다음이 대출 기간입니다. 보통은 대출 기간이 길 수록 높은 금리를 받게 됩니다. 아무래도 대출 기간이 길게 되면 그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떼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같은 주택담보에 같은 원금이라고 해도 10년 만기냐, 20년만기냐, 30년 만기냐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이치이지요.
보통 대출 상환 기간이 길어지면 나눠내는 원금의 크기는 작아집니다. 대신 매해 내는 이자율은 올라가게 됩니다. 상환 기간이 길어져서 상환액이 적어지는 ‘느낌’은 매번 상환해야하는 원금의 크기가 작아져서 나타나는 일종의 ‘착시’입니다.
여기까지는 기업이 돈을 빌리는 자본시장이나 개인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대출 시장에서 모두 다를 게 없습니다. 부수적으로 담보의 유무, 시장 금리, 기준금리, 채무자와 채권자 간 수요와 공급 등이 포함됩니다.
담보의 유무를 살펴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담보가 있으면 금리는 떨어집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대출이나 채권의 금리(여기서는 이자율)는 떼일 확률에 비례합니다.
만약 채무자(돈을 빌린 사람)가 돈을 못 갚게 된다면(바꿔 말하면 부도가 난다면) 채권자(돈을 빌려준 사람)는 담보를 경매에 넘기거나 매각해서 일부를 상환 받을 수 있습니다.
은행의 경우에는 집값이 어느 정도 하락할지까지 계산해서 대출을 내주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원금까지 다 챙겨가곤 합니다. 따라서 ‘담보가 있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 금리보다 항상 낮았습니다.
매해 수천억원 배당금을 받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명예회장의 유족들이 구태여 (대주주여서 팔지도 못하는) 주식 담보를 은행에 제시한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자 부담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의 2010년 CES2010 참석 모습. 삼성 제공 |
|
물론 ‘블랙스완’(검은백조)처럼 예상치 못한 상식 밖의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아주 가끔입니다만 신용대출 금리가 주택담보대출 금리보다 낮아질 때입니다. 시장 금리가 워낙 낮게 형성되다보니, 신용대출 금리가 주택담보대출을 설정할 때 소요되는 원가보다도 낮아진 것입니다.
쉽게 말해 신용대출 금리는 3.5%에서 2.5%로 하락했는데, 주택담보대출금리는 3.0%에서 2.7%로 떨어지는 데 그쳤다는 뜻입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시중은행들이 최고신용자들에 대한 우대금리 혜택을 줄이고, 시장금리 상승으로 신용대출 금리가 올라가면서 주담대 금리가 신용대출 금리보다 높은 상황으로 다시 돌아오긴 했습니다.
주담대나 신용대출 혹은 기업대출 금리는 대부분 은행이 금리를 제시하는 형태로 형성됩니다. 은행은 시장금리와 자신들의 조달 비용을 상황을 계산하고 차주(대출자)의 담보 가치, 부도 가능성까지 고려해 각 개인과 기업에 금리를 제시합니다.
대출을 ‘시장 상품’이라고 가정하고 금리(이자율)를 ‘가격’이라고 가정한다면, 은행은 상품 판매자(공급자)가 됩니다. 대출자는 소비자(수요자)가 되는 셈입니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원가의 변동에 따라 가격은 결정되는 것입니다.
2020년의 대출 금리가 1980년대의 대출금리보다 엄청 싼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가 발전해 돈이 흔해졌다는 것도 있지만, 대출 공급자가 꽤 많이 늘었다는 뜻도 됩니다. 은행 수와 은행이 대출에 가용할 수 있는 자산 규모는 1980년대와 비교할 수가 없지요.
은행 입장에서 원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외부에서 돈을 빌려 오는 비용입니다.
‘은행도 돈을 빌려온다?’라고 의아해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은행이야 말로 남의 돈으로 ‘돈 놓고 돈 먹기’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금자나 자본시장에서 싼 금리로 자금을 빌려 와서 비교적 비싼 금리로 대출을 해주고 그 사이 이자 마진을 수익으로 챙기는 것이지요.
대신 은행은 차주 부도에 대한 리스크를 집니다. 이 리스크를 엄격하게 계산을 하는 건데 못하면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은행 안에 이 리스크에 대한 확률을 계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를 계산하는 능력이 곧 은행의 역량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은행의 역량과 역할 덕에 우리는 아파트 같은 비유동성 자산(현금처럼 쓸 수 없는 자산)을 유동화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를 담보로 잡고 대출을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차주는 이를 갖고 사업을 할 수 있고 다른 곳에 투자를 합니다. 혹은 소비 활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시장에는 현금이 늘게되는 것입니다.
아파트와 같은 자산의 가치를 측정하고 이를 담보로 대출을 내주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이 돈은 은행 돈이 아니라 외부에서 조달해옵니다.
가장 많게는 예금이고, 그 다음으로 자본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해 빌려 오는 것입니다. 혹은 다른 은행으로부터 급전을 대여할 수도 있습니다.
예금은 뭘까요? 예금은 은행 입장에서 빚입니다. 정기예금이라면 1년, 보통예금과 같은 요구불예금이라면 수시로 내줘야 합니다. 이자도 붙여서 내주죠.
이 예금의 성격은 일종의 단기채와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만기가 짧은 채권 혹은 대출이 됩니다. 만기가 짧다는 것은 부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뜻하고 그만큼 이자를 덜 줘도 됩니다. 정기예금의 만기가 1년 이상인 경우가 많지 않은 것도 은행 입장에서는 이자를 덜 줘야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입니다.
은행은 대출에 필요한 자금 70~80% 정도를 예금에서 조달합니다. 은행을 믿고 싼 금리에도 돈을 맡기는 예금자들의 돈입니다.
나머지는 은행채를 발행하거나 3~6개월 정도 만기인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발행해 조달합니다. 이 돈도 대부분은 1년 이하 단기채를 빌려옵니다. 기업처럼 장기 투자를 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크지만, 보다 싼 금리로 대출 자금을 당겨오기 위한 목적입니다.
다만 대출자 입장에서는 은행들의 금리 산정이 합리적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혹여 은행이 담합을 해서 금리를 높게 잡는다면 대출자는 높은 금리를 더 내야합니다. 그래서 코픽스의 개념이 나옵니다. 은행들이 조달하는 자금의 비용을 가중 평균해 계산하는 것입니다.
이 코픽스 금리에 은행들이 대출의 원가로 쓰입니다. 코픽스 금리에 은행의 마진을 얹고, 그 위에 차주 부도 가능성에 따른 비용을 올려 놓는 것이지요. 이렇게 차곡차곡 금리를 쌓고, 우대금리로 빼주고 하면서 최종 우리의 대출 금리가 결정됩니다.
코픽스를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은행이 실제 취급한 예적금과 은행채 등 수신상품 금리가 인상 또는 인하될 때 이를 반영합니다. 아무래도 예적금 비중이 높다보니 결정적인 변수는 예금 금리입니다.
| 자료 : 한국은행, 은행연합회. 신규취급액 코픽스와 예금금리(시중은행 저축성 예금 평균금리)와 큰 차이가 없는 게 보입니다. |
|
예컨대 시장 금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예금 금리가 떨어진다면 코픽스의 방향은 아래쪽을 가리키게 됩니다. 최근 코픽스의 향방과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지난 4월 코픽스 금리는 0.02%포인트 하락했습니다.
올해 들어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라 장기채 금리는 상승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약간 둔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연초대비 대체로 상승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런 장기채의 금리는 은행의 대출 금리와는 큰 연관성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은행은 대출에 필요한 자금을 단기채 성격이 강한 자금에서 조달하기 때문입니다. 이중 하나가 예적금입니다.
설령 단기채 금리가 떨어진다고 해도 은행 예적금 금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코픽스가 받는 영향은 적습니다. 예적금 금리가 움직여야 비로소 코픽스도 움직이는 것이지요. 사실상 예적금 금리와 코픽스가 같이 움직인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은행 예적금 금리는 왜 떨어져있고 왜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시장금리가 낮아진 상태에서 돈이 넘쳐나는 데 있습니다. (물론 시장금리가 낮아지면 돈이 늘어나긴 합니다)
최근 주식 시장이 답보 상태를 보이고 코인 시장마저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도 비슷합니다. 시중 자금은 늘었는데 갈 곳이 없는 것이지요.
임시로 있을 만한 곳은 결국 은행 계좌입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요구불예금은 지난해 연말 이후 4월말까지 45조4442억원 늘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연리 0.1% 이자만 줘도 되는 돈이 은행에 몰리는 것입니다.
게다가 은행 예금 금리는 시장금리 상황보다는 은행권 자금 상황과 더 관련 있습니다. 대출해줄 예금이 부족한 상황이 돼야 예금 금리를 높이는 것이지요. 대출자금 100%를 예금에서 충당해야하는 저축은행의 예금 금리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5월 들어서는 양도성예금증서(CD) 등 단기채 금리도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은행이 조달하는 자금 비용이 더 떨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최근 시장금리는 오르는 추세인데, 왜 코픽스는 떨어졌는가? 물론 0.02%포인트라는 소폭의 하락치이지만, 최근 은행 예금 금리가 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고 있고 단기채 금리까지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 예금 금리는 왜 낮은가. 기준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가만히 있어도 시중 자금이 몰려오고 있어서입니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라 주식 시장 상승세가 꺾인데다, 코인 시장마저 불안해지니, 갈 곳 잃은 자금들이 임시 거처로 은행을 찾는 것입니다.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입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나 재무부에서 테이퍼링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를 각국 중앙은행들은 완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돈을 푸는 정책이 유지되는 한 은행 예금 금리가 오를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의 대출 금리 또한 당분간 오를 일이 없다’라는 얘기입니다. 대출 금리가 급박하게 오르지 않는다면 현재 자산 시장의 고평가된 가격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귀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될지 몰라도 말입니다...
‘돈이 늘어나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라는 전통 경제학의 상식이 강하게 도전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금리는 어떻게 될까요? 다른 건 몰라도 초유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