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도열차' 김정민 "장우재 연출과 8편…긴밀한 작업자"

by김미경 기자
2016.04.14 06:16:00

2014년 점프한 1950년대 아낙 연기
연극 '환도열차'서 지순 역
2014년 초연 뒤 2년 만에 다시 예술의전당 무대
60년 전 과거서 온 역할 호평
서울사투리 '사랑방 손님…' 옥희서 따와
장 연출과 2010년 첫 작업, 이듬해 이와삼 입단
"생명력 지닌 배우 되고파"

연극 ‘환도열차’에서 이지순 역을 맡은 배우 김정민이 연습시간을 쪼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포즈를 취했다. “지순이를 연기하면서 행복했다”는 김정민은 “이 작품을 하면서 사람들을 곡해하지 않고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거 같다. 관객 역시 지순을 통해 잃고 있던 감성을 다시 꺼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웃었다(사진=방인권 기자 bink7119@).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순전히 ‘운발’이다.”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배우 김정민(34)은 “좋은 연출과 작품을 만난 덕”이라며 기자의 칭찬에 손사래를 쳤다. “장우재 연출의 작품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의 작품에서 주역을 맡고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은 배우로서 굉장한 행운”이라고 했다.

배우 김정민이 연출가 장우재(극단 이와삼 대표)의 페르소나로 다시 돌아왔다. 올 초 전인철 연출의 연극 ‘고제’ 작업을 통해 잠깐의 외도를 한 뒤 바로 1950년대 아낙 ‘지순’으로 빙의했다. 2년 만에 앙코르공연 중인 연극 ‘환도열차’(17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60년을 훌쩍 뛰어넘어 서울에 당도한 여주인공 지순 역을 초연에 이어 다시 맡았다.

작품은 1953년 피란민을 싣고 부산에서 출발한 환도(還都) 열차가 60년이란 시공간을 뛰어넘어 돌연 2014년 서울에 당도한다는 판타지를 바탕으로 한 연극이다. 기차에서 혼자 살아남은 여인 지순이 겪는 사건을 통해 한국현대사를 냉철히 비판하는 장 연출의 대표작이다.

2007년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연극 ‘이름’(연출 윤광진)을 통해 데뷔한 김정민은 연기보다 무용에 더 관심이 많았던 학생이었다고 했다.

장우재 연출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배우 김정민은 요즘 대학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 중 한 명이다. 17일 연극 ‘환도열차’를 마친 뒤 바로 다음달에 ‘햇빛샤워’로 관객을 만난다. 역시 장 연출의 작품이다.
“중학생 때 제일 친한 친구가 무용을 했는데 그게 너무 좋더라. 연습실에서 새벽까지 안 나올 정도로 춤에 빠져 살았다. 부모님 반대가 심했다. 돈도 많이 들고 다른 진로를 찾지 못하겠더라. 굳이 대학에 갈 생각도 없었다. 그러다가 부모님 설득에 한달 만에 속성으로 연기를 배워 대학에 갔다. 지금 보면 몸을 쓰거나 무대에 서고 싶은 욕구가 계속 있었던 거 같다. 정서적으로 어색함 같은 게 없었다.”

김정민의 10년 차 이력을 들여다보면 내공이 만만치 않다. 맡은 역할마다 ‘팔딱팔딱’ 생명력 있는 인물이 만들어진다. 지난해에는 장 연출의 또 다른 초연작 ‘햇빛샤워’에서 밑바닥 인생을 사는 ‘광자’ 역으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았다.

“다른 정서의 두 인물인데 어떤 차이를 두고 연기하고자 했던 건 없었다. 캐릭터로 접근하다 보면 작위적인 인물이 되게 마련이다. 인물의 생각을 주로 따라가는 편이다. 그 사람의 뇌구조·생각·패턴, 그런 것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냥 인물에 가까워진다는 걸 느낀다.”



‘날 데려다 주시라요. 내래 그 열차를 타고 진짜 현실로 돌아가야겠어요’ ‘이건 다 이야기예요.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 꾸며낸 이야기요’ 등. 서울사투리를 쓰는 지순의 말투는 흑백영화 ‘마부’나 당시 영상 등을 수집해 자기 식대로 만들었다고 했다.

“서울사투리라는 게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 말투와 가장 가깝다고 해서 그렇게 만들어갔다. 실제 도움이 됐던 건 옥희의 감성이었다.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는 옥희의 감성이 1960년대에서 현재로 타임슬립한 지순과 딱 맞아떨어졌다.”

초연 때는 사투리에다 겪지 못한 감성을 표현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면 지금은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 전달자’로서 편안하게 연기하려고 하는 중이다. “지순을 연기하면서 진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서정성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관객들이 잃었던 옛 정서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소박한 바람이다.”

무려 8편이다. 장 연출과는 2010년 서울시극단의 ‘7인의 기억’으로 처음 만난 뒤 ‘택배 왔어요’ ‘장롱 속의 바다’ ‘여기가 집이다’ ‘미국아버지’ ‘햇빛샤워’ 등을 함께 작업했다. 덕분에 장 연출의 페르소나로 불린다. 장 연출에 따르면 김정민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배우다.

쌍꺼풀 없는 눈, 편안한 인상을 가진 배우 김정민도 한때 성형수술을 시도하려고 했단다. “10년도 더 된 얘긴데 성형외과에 예약금 15만원까지 걸었다가 얼굴을 바꾼다는 게 갑자기 너무 무섭게 다가오더라. 그래서 결국 안갔다”며 “장우재 연출은 혹시 성형을 하면 그때부터 절대 캐스팅하지 않겠다고 하더라”고 웃었다.
“‘7인의 기억’ 당시 주인공 역할로 추천을 받아 오디션을 보러 갔다. 장 연출이 나를 몰랐을 때다. 좀 지독하고 집요한 면이 있는데 오디션만 4일을 봤다. 결국 떨어졌다. 나중에 이름 없는 친구 역할을 제안하더라. 다행히 작업과정에서 많이 예뻐해줬다. 그 인연으로 2011년 극단 이와삼에 입단했다.”

김정민 역시 장 연출과의 작업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작품이나 극 중 인물을 가지고 많이 싸우는 편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허심탄회하게 다 이야기할 수 있는 연출이다. 긴밀한 작업자가 됐기 때문에 그런 허용범위가 생긴 것 같다. ‘네 식대로 해봐’라고 다 맡길 때도 고맙다.”

영화든 드라마든 기회가 주어진다면 도전할 생각이다. “한가지만 고집하는 게 배우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배우에게는 어떤 환기가 필요하다. 그 환기를 드라마나 영화가 해줄 수 있다면 좋다. 좋은 작품을 통해 그 안에서 빛나는 것도 좋지만 배우로서의 유연성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기회가 되고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장르는 상관없다.”

다만 생명력을 지닌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최근에 술자리에서 우연히 최용훈 연출을 만났는데 ‘너는 연기는 못 하는데, 무대에선 힘이 있어’라고 말해주더라. 그 얘기가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사실 생명력이라는 건 잃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무대 위에서는 매력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배우 김정민은 “극중 인물의 생각·고민·생애 그런 것을 따라가면서 인물을 만들어가다 보니 감각적으로 색깔을 재현해내는 배우보다 좀 늦는 편”이라며 “관객과 만나면서 탄력이 붙는 것 같다. 초연 때 지순도 그렇게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말했다. 60년 전 여성을 스폰지처럼 소화한 김정민은 장우재 연출의 서정적인 인물을 실제처럼 만들어냈다는 호평을 얻었다. 연극 ‘환도열차’의 한 장면(사진=예술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