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정승 강단 느껴지는 길게 뻗은 물줄기

by조선일보 기자
2008.12.04 11:45:00

1년 52주 당일치기 여행 - 임진강 하구

[조선일보 제공] 임진강은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한강에 부드럽게 합류하는 포용력을 보여준다. 이 강을 배경으로 살았고, 이 강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던 조선시대 유명인 두 사람, 방촌(�村) 황희(黃喜)와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삶은 임진강을 닮았다. 강이 사람을 낳았는지 사람이 그 강을 보고 배웠는지 모를 일이다.

자유로를 따라 달리면 한강은 거의 직선으로 보인다. 반면 임진강은 흐름이 자주 크게 휘어진다. 이 임진강이 한강과 합류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크게 휘돌아나가기 직전, 강변 절벽 위에 반구정(伴鷗亭·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사진)이 있다.

▲ 반구정 /조선영상미디어

조선시대 최고 재상으로 꼽히는 황희는 60대에 이곳에 칩거하며 조용히 삶을 즐기다 영의정이 되어 서울로 들어갔다. 18년 뒤 관직에서 물러난 후엔 반구정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갈매기들과 벗하며 한가로움을 즐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 반구정이다. 지금의 정자는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것을 1967년 후손들이 다시 옛 모습대로 개축한 것이다.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는 별로 없지만 '위치와 전망'이라는, 정자의 진정한 가치는 사라지지 않았다.

'황희 정승'은 '중용'으로 유명하지만 원칙에 어긋난 부분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킨, 강단 있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태종이 셋째 아들인 충녕에게 세자 자리를 주려 하자 왕위는 반드시 첫째 아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귀양 갔던 사람이 그였다. 세종은 자신의 왕위 계승을 반대했던 황희를 귀양지에서 불러다 등용했으니 둘 다 대단한 인물인 셈이다.

정자에 올라 눈을 북쪽으로 돌리면 직선에 가까운 임진강 물줄기가 길게 뻗어 있다. 남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크게 휘어져나가는 물줄기가 눈길 끝에 걸린다. 저녁 무렵에 들르면 임진강 끝자락에 걸치며 산을 넘어가는 일몰 풍경이 아름답다. 강과 산, 정자가 어울린 '고품격 낙조'랄까. 입장료 대인 500원·소인(18세 이하) 300원.

임진강이 품고 있는 또 한 사람은 율곡 이이다. 이이 하면 흔히 강릉의 오죽헌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그의 조상들이 터를 잡았고 그가 가장 오래 살아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은 파주 임진강변 일대다. 동네 이름조차 '율곡리'인 마을 강변 화석정(花石亭)은 율곡 이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어느 쪽으로 눈을 돌려도 유려한 강의 흐름이 아름답다. 화석정의 풍경은 율곡이 8세 때 지은 시가 잘 표현하고 있다. "… 멀리보이는 물은 하늘과 연하여 푸른데/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을 받아 붉구나…" 높은 경지에 오른 대가지만 다른 사상과 학문을 존중하고 포용했던 이이의 마음이 유장하게 휘돌아나가는 임진강에서 느껴지는 듯하다.





●: 넓은 잔디 언덕과 형형색색으로 돌아가는 숱한 바람개비가 화려하다.

●: 파주시 적성면 두지나루에서 황포돛배를 타면 고랑포 여울을 돌아 임진 적벽 등을 돌아보며 약 45분간 강 여행을 한다. 오전 11시~오후 5시, 성인 8000원·소인 6000원. 두지나루 매표소 (031)958-2577.

맛집 반구정 바로 옆 반구정 나루터집(031-952-3472)은 50년 전부터 영업한 장어구이집. 장어에 발라내는 양념이 뒤끝 없이 담백하다. 장어구이 1인분에 2만1000원. 반구정 들어가는 길가의 반구정 어부집(031-952-0117)은 참게매운탕(2인분 4만원)이 깔끔하다.



●: 자유로 문산 나들목→37번 국도→첫 삼거리에서 사목리 쪽으로 좌회전→1.3㎞ 가다가 굴다리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 굴다리 지나면 반구정. 화석정은 37번 국도 적성 방면→도로가 임진강을 만나는 시점에서 오른쪽 '화석정'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