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사는 김씨, 용인만 가면 기름 ''가득'' 채우는 이유
by조선일보 기자
2008.09.18 10:08:36
기름값, 서울 안에서도 L당 200원 차이
정유사들, 지역따라 공급가 천차만별
유가 급락했지만 소비자들은 못느껴
[조선일보 제공] 서울 서초구에 사는 회사원 김재훈(34)씨는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거래처에 갈 때마다 그곳에서 기름을 넣는다. 김씨는 "국제 유가가 많이 내렸다고 하는데, 집 근처 주유소 가격은 여전히 1L(리터)당 1900원대로 꿈쩍도 하지 않는다"며 "용인은 200원 정도 싸기 때문에 용인에서 기름을 가득 넣곤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안재희(29)씨도 노원구에 사는 여자친구를 바래다 줄 때마다 그곳에서 기름을 넣는다. 같은 서울이지만, 일대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이 L당 100원 정도 싸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와 석유제품 가격이 지난 7월 이후 급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서울 강남권 등 일부 지역의 주유소 기름값은 거의 요지부동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일부러 기름값이 싼 지역을 찾아 기름을 넣는 등 '싼 주유소 찾기' 붐까지 일고 있다.
실제 석유공사의 주유소종합정보시스템에서 서울 지역의 휘발유 가격을 비교해 보면(9월 16일 현재), 중랑구의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1L당 1701원이다. 도봉구와 광진구, 강북구, 동대문구, 구로구, 성동구 등도 모두 1700원대이지만, 강남구는 1900원이 넘는다. 같은 서울 안에서도 어느 지역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느냐에 따라 1L당 휘발유 가격이 200원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시·도별 격차도 상당하다. 경북과 대구지역이 1L당 1692원과 1695원으로 가장 싼 반면, 서울은 1824원으로 130원 정도 격차가 난다. 소비자들은 "같은 기름을 넣는 것인데, 지역에 따라 가격이 L당 100~200원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한국주유소협회의 정상필 기획팀장은 "주유소 별로 가격이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원인은 정유사의 공급가격 탓"이라며 "정유사들이 주유소 운영자의 신용상태, 현금동원 능력 등에 따라 공급가격을 달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전국 주유소의 70%가 모여 있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지역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공급가격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설명이다.
자기 땅에 주유소를 운영하는지, 임대해 운영하는지에 따라서도 휘발유 가격은 달라진다. 가령 서울 강남지역에 주유소를 임대해 운영하려면 한 달에 임대료로 약 2500만원을 내야 한다. 이 경우 본인 소유의 주유소보다 휘발유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시민모임의 우혜경 팀장은 "1L당 휘발유 가격이 같은 서울에서 200원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은 특정 지역 주유소들의 폭리(暴利)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제 유가가 급락하는데도,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지나치게 느리고 찔끔 내려 도저히 체감(體感)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최근 환율 상승 영향으로 기름값 인하 효과가 반감되는 구조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국내 휘발유값 산정시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국제석유시장의 휘발유 제품 가격은 지난 7월 첫째주 배럴당 평균 145.7달러에서 9월 둘째주 평균 106.3달러로 27% 정도 내렸다. 하지만 원화 환산 가격은 같은 기간 배럴당 15만2043원에서 11만9083원으로 21.6% 하락에 그쳤다. 같은 기간 원 달러 평균 환율은 평균 1043.5원에서 1120.2원으로 7% 정도 상승했다.
한국석유공사의 정진규 석유정보센터 팀장은 "전국 1만여개 주유소의 판매 가격을 담고 있는 오피넷 같은 인터넷 정보 등을 이용해 주유소들의 기름값을 꼼꼼히 비교해 보고 골라간다면 좀 더 싼 가격에 기름을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