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24시]'종교세 유예, 경유세 인상' 김진표는 X맨인가

by최훈길 기자
2017.07.08 12:32:54

정부 조율 없이 민감한 조세정책 ''엇박자'' 발표
文 정부에 부담 주는 X맨? "지지율 하락할 것"
악역 총대 멨다? "이탈표 방지, 공약재원 준비"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최근 기획재정부가 잇따라 발칵 뒤집혔다. 김진표(사진·70)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의 잇단 ‘돌발 인터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종교인 과세를 2년 유예하는 법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단계적으로 경유 가격을 인상하는 방안을 하반기부터 논의해 내년까지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조세당국인 기재부와 협의를 거친 게 아니었다. 언론 보도로 소식을 접한 기재부는 “1월 시행에 차질 없도록 하겠다”, “경유세 인상 계획이 없다”고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김 위원장의 발언에 여론의 반응도 싸늘하다. “김진표는 엑스맨(X맨)”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을 깎아 먹고 야당을 사실상 돕는 스파이 역할을 한다는 의혹이다. 정말 그런 것일까.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물어봤다. 지지율 여파를 놓고 보면 ‘X맨’ 의혹이 웃어 넘길 일이 아니었다. 권순정 리얼미터 조사분석실장은 “경유차를 주로 서민, 자영업자들이 많이 타고 있어 경유세 인상은 여권 지지율에 분명히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이라며 “내년 지방선거가 적폐청산, 야권 발목잡기 프레임으로 갈 것으로 보여 과세 형평성·기득권 문제 해소 측면에서 종교인 과세를 하는 게 여당에 긍정적 결과를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MBN이 리얼미터(대표 이택수)에 의뢰한 2014년 11월20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종교인들에게 이제는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71.3%에 달했다. 비과세 의견은 13.5%에 그쳤다. 과세 의견이 신자, 비(非)신자 모두 비과세 의견보다 높았다. 비과세 의견은 개신교 33.0%, 천주교 16.7%, 불교 5.6%, 무교 4.6%로 조사돼, 개신교 측의 ‘조세 저항’이 제일 심했다.

이런 선거 악영향 전망에도 김 위원장이 이 같은 입장을 공개적으로 잇따라 밝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권 측에선 “조율된 게 아닌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긋는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달 26일 춘추관에서 “경유 가격을 휘발유 가격 대비 120%까지 인상할 수 있다는 아주 비현실적인 주장이 보도됐다”며 “청와대와 협의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또 종교인 과세 유예와 관련해 “청와대와 조율을 통해 결정된 바가 없다”며 “그것은 김진표 위원장의 이야기다. 우리는 조금 더 살펴보고 전체적으로 조율이 필요한 사안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정기획위 관계자도 지난 7일 통화에서 “김 위원장은 오랫동안 (경제정책을) 해봤기 때문에 결정된 얘기를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낸다”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도 “김 위원장과 종교인 과세 유예, 경유세 인상을 협의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종교인 과세 유예 관련해서는 세법 원칙에 어긋나는 김 위원장의 개인 의견이라는 의견이 많다. 김 위원장은 현재 수원중앙침례교회 장로를 맡고 있다. 세법 전문가인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세무학회장)는 “국민 개세주의라는 세법 원리·원칙에 따르면 당연히 종교인에게 과세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국민 개세주의(皆稅主義)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이다.

그럼에도 이상하다. 김 위원장은 재정경제부(현 기재부) 세제실장을 거쳐 참여정부 경제부총리를 역임했다. 또 원내대표 등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4선 중진 의원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5년의 ‘100대 국정과제’를 정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기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최고의 관료’로 평가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에 와서 X맨으로 헛발질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김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 악역으로 총대를 멨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에게 물어봤다. 신 교수는 2012년에 김 위원장과 함께 대담집 ‘국민먼저’(호두나무 펴냄)을 출간했다.

“종교인 과세는 뒷감당이 문제다. 종교인이 전 국민의 절반이다. 정권 하반기로 갈수록 문 대통령의 현 지지율이 유지될 수 없다. 그런데 종교인 과세로 종교인 이탈까지 생기면 정권으로선 골치 아픈 일이 된다. 그래서 그동안 어느 정권도 과세를 못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현실 정치인으로서 이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경유세는 두 가지가 고려됐다고 본다. 첫째 문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미세먼지 감축을 약속했다. 그런데 정권 초기에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 미세먼지 관련해 얘기를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말처럼 경유세를 잡았다고 본다.

둘째는 재원 마련 때문이다. 누리과정 국고지원, 기초연금, 공공부문 일자리 공약을 지키려면 재원이 필요하다. 증세를 내후년부터 시작하면 늦는다. 당장 올릴 수 있는 것부터 올리자는 생각에서 경유세를 잡았을 것이다.”

실제로 경유세를 인상하면 공약재원을 상당하게 충당할 수 있다. 이동규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지출성과관리센터장은 지난 4일 공청회에서 “경유를 지금보다 2배 이상인 리터당 2600원으로, 휘발유를 2200원으로 올릴 경우 미세먼지는 최대 2.8% 감소하고 유류세는 연간 최대 18조1535억원 걷힐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밝혔다. 이는 기재부·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가 의뢰한 연구용역 결과다.

김 위원장은 올해 정기국회에 종교인 과세를 유예하는 법안을 내고 12월까지 처리할 계획이다. 이어 올해 하반기에 조세·재정개혁 특별위원회를 신설해 내년까지 경유세 인상 여부를 담은 세제 개편안을 문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저서 ‘한국경제 희망 있다’(SPC 펴냄)에서 “우리 집의 가훈은 ‘성실’이다. 논어에 있는 말 중에서 따온 것으로 모든 일에, 모든 사람에게 열과 성을 다하자는 뜻에서 아버지의 ‘근면’과 ‘검소함’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김 위원장은 종교인 과세, 경유세 관련한 논의에 특유의 성실함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정부와 계속 엇박자를 내 X맨으로 판명이 날지, 문재인 정부의 악역으로 총대를 메고 나섰는지도 조만간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 정권 만을 위한 게 아니라 국민에게 유익한 결정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게임에서 일부러 실수해 자기 팀을 지게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김제동, 강호동, 유재석 등이 출연한 SBS 예능프로그램 ‘X맨 - 일요일이 좋다’가 인기를 끌면서 대중적으로 이 용어가 사용됐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아군에 숨어 있는 적군(스파이)’이라는 뜻으로 이를 사용하기도 한다. [기재부 24시]①경유세 인상론 꿈틀..제2 담뱃세 논란 [기재부24시]②종교인 과세 D-6개월, 고심하는 김동연 부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