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버티고, 고집을"…윤석열 정부 후임 향한 탁현민의 충고

by이선영 기자
2022.05.09 09:09:37

[이데일리 이선영 기자] 9일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는 가운데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새 정부 의전비서관에게 “애정을 가지고 행사를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전날 탁 비서관은 페이스북에 ‘신임 의전비서관, 행사기획비서관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을 올리며 신임 의전비서관들이 가져야 할 자세와 태도를 조언했다.

탁 비서관은 “미국에서는 퇴임하는 대통령이 새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는 전통이 있다고 들었다”며 “‘결단의 책상’이라고 불리는 대통령 집무실의 책상에 이임 대통령이 편지를 두고 떠나고 새 대통령은 그 편지를 읽는 것으로 집무를 시작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도 그런 전통을 만들고 싶어했다. 대통령 뿐 아니라 모든 비서관들이 새로이 그 자리를 맡는 사람들에게 편지 한통 을 두고가는, 그래서 그 편지에는 경험한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을 두고 가는, 그런 전통”이라며 “청와대의 역사가 단절되고 보니 이제 그렇게 하기는 어려워져서, 나는 대통령의 의전과 행사기획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들을 두고 떠나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미리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내가 했던 경험이 언제나 유효한 것은 아니다. 내가 겪었던 시대,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 그리고 관계 속에서만 유효 할 뿐일지 모른다”며 “그러니 이것은 다만 참고 되어야 할 뿐이다. ‘방법’이 아니라, ‘이야기’로 들어 주면 족하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탁현민 의전비서관. (사진=연합뉴스)
탁 비서관은 “‘애정’을 가져라. 가까이 모시고 있는 ‘대통령’으로부터 멀리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저 건너편의 사람들까지”라며 “내가 어떤 정치적입장을 가졌던, ‘직’을 맡는 순간 부터 ‘정치적 입장’ 보다 우선하게 되는 것이 ‘국가적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는 종종 국가행사나, 기념식, 추념식등을 준비하며, 이 일이 ‘제사’와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며 “아무리 사이가 좋지않고, 밉고, 싫어도, 한 가족의 제사 상 앞에서 가족들은 억지로라도 서로를 참고, 예를 다하려 한다. 또 그러한 자리에서 화해도 하고, 이해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나보다 젊고, 어린 사람에게 배워라. 내가 아는, 내가 시도한, 모든 참신한 것들은 저보다 어린 사람에게 배웠다”며 “선배들이나, 나보다 웃세대에게 새로운 것을 기대 할 수 없다. 그분 들에게 배울 것은 다른 것”이라고 조언했다.그러면서 “나는 이십대의 어떤 친구와 의전비서관실에서 오래 일했다. 주로 삐딱하고, 예의도 별반 없고, 실수도 잦고,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도 어려운 그런 친구였다”며 “하지만, 함께 회의를 하고 기획을 하다보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야기하고, 내가 무심했던 부분을 지적하고, 내가 갖지못한 감성을 드러내는 일이 많았다”고 전했다.



또 탁 비서관은 “잊어버려라. 대통령 재임기간동안 치뤄내야할 행사가 국·내외를 합쳐 1800개 가량이 되었다. 그 중에는 되풀이되는 일정도 있고, 지극히 형식적인 것도 있고, 다시 없을 큰 행사도 있다”며 “나의 실수도 있고,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실수도 있고, 협업을 하는 부처의 실수도, 상대국가의 실수도 있다. 그렇지만 잊어버려라 당신은 내일 또 다른 일정과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탁 비서관은 “버텨라. 그리고 고집을 부려라. 국가기념식과, 대통령의 행사에는 많은 사람들의 요청과 민원이 없을리 없다. 모든 요구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나름의 이유는 때로는 압력으로 때로는 인간적인 호소로 찾아온다”며 “그러면, 애초의 기획의도, 연출의도는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거절하면 상당히 불편해질 것이 분명한 일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나 그 갈등을 못 버티고 끝내 수용하게 되면, 그때 잠시는 고맙다는 말을 들을 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게 된다”며 “같이 기획을 했던 동료들이 당신에게 실망한다. 그것도 못 막아주었다는 눈치를 받게 된다. 국민들이 알게된다”며 그것이 대통령을, 나를 위한 길이라고 거듭 조언했다.

지난 5일 윤 당선인은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급 1차 인선을 발표하며 비서실장 직속 의전비서관에 외교부 출신의 김일범 당선인 외신공보보좌역을 임명했다.

탁 비서관은 후임 의전비서관에게 보내는 업무 관련 조언 편지를 개인적으로 전하지 않고 굳이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밝힌 이유에 대해 “청와대의 역사가 단절됐기 때문”이라고만 설명했다.

윤도현 밴드, 자우림, 들국화 등 유명 가수들의 공연 기획을 맡아왔던 탁 비서관은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주최한 북 콘서트 기획자로 문 대통령과 인연이 닿게 되며,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의전비서관으로 발탁됐다.

탁 비서관은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문 대통령의 각종 의전, 공식 행사를 진두지휘 했으며 2018년 과로를 이유로 중간에 사직을 했으나, 2020년 5월에 다시 청와대로 복귀해 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