춧! 춧! 60마리 말 몰고 칭기즈칸이 제주에 왔다
by조선일보 기자
2008.11.20 12:00:00
제주도 ''The 馬 Park''
칭기즈칸의 어린 시절부터 황제 되기까지 일대기
몽골인 58명…직접 훈련시킨 말로 본격 마상공연
[조선일보 제공] 제주도와 몽골을 이어주는 키워드는 '말(馬)'이다. 제주 사람들은 '말'을 '�'이라 쓰고 '물'과 '말'의 중간쯤으로 발음하는데 몽골어 발음도 이와 똑같다. 제주 '조랑말'과 비슷하게 생긴 말을 몽골에서 '조러멀'이라 부른다. '말'이란 연결고리가 인연이 된 것을까. 몽골 영웅 칭기즈칸의 삶을 주제로 한 대형 마상(馬上) 공연이 제주에서 열린다.
제주도 남서부 '더마파크(The 馬 Park)'에서 26일부터 펼쳐지는 공연 '칭기즈칸의 검은 깃발'. 17일 찾은 리허설 현장에선 몽골인 배우 58명과 말 58마리가 모래 깔린 쌀쌀한 야외 공연장을 누비며 칭기즈칸의 삶을 말 위에서 풀어내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금박 박힌 흰 망토를 두르고 백마를 준비 운동시키는 칭기즈칸 역 도르 아룬볼트씨는 뼈대가 굵어 보였다. 코 아래와 턱에 셋으로 나뉘어 난 수염 아래로 "춧! 춧!"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룬볼트씨는 "이 말들은 몽골 사람들이 길들여서 '이랴'는 모르고 '춧, 춧'만 안다"며 껄껄 웃었다.
| ▲ 쭉 뻗은 네 다리로 초원과 사막을 내처 달리는 이 튼튼한 동물은 몽골인과 제주 사람 모두에게 말(물과 말의 중간 발음)이라 불린다. 26일부터 제주시 한림읍 더마파크(The 馬파크)에서 펼쳐지는 공연 칭기즈칸의 검은 깃발은 몽골 영웅 칭기즈칸의 삶을 말 위에서 펼쳐 놓는다. / 조선영상미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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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분간 이어진 공연은 죽마고우 자무카와의 행복했던 시절로 시작해 질투심에 휩싸여 반란을 일으킨 자무카를 처형하고 테무친이 '진정한 황제' 칭기즈칸에 오르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58명 단원은 더마파크와 몽골 '울란바타르 마사협회'가 몽골 최대 전통 축제 '나담'에 참가했던 이들 중 오디션을 거쳐 선발했다. 더마파크 조의환 사장은 "공연단 모집을 끝낸 5월부터 지금까지 7개월째 쉴 틈 없이 연습 중"이라며 "시나리오는 몽골서 기초작업을 하고 한국팀이 극적인 장면을 더해 가다듬었다"고 했다.
공연의 가장 큰 주역은 58마리 말이다. 인디언들이 타고 달렸다는 미국 출신 얼룩무늬 말, 머리가 크고 다리가 짧은 제주 포니(pony), 눈을 희번덕거리는 호주 출신 백마(白馬), 늘씬하게 잘 빠진 한국의 은퇴한 경주마가 함께 공연을 펼친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다국적 공연단인 셈이다. 아룬볼트씨는 "몽골 말은 반출이 안되기 때문에 타던 말을 데려올 수 없었다"며 "연기를 위해 백지 상태의 말을 새로 길들여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세계에서 말 훈련을 가장 잘 시킨다는 몽골인들에게 속성 집중 교육을 받아서인지 말들의 연기는 수준급이었다. 어린 테무친과 자무카를 태운 작은 조랑말 두 마리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옆구리를 붙이고 공연장을 쌩쌩 돌았다.
칭기즈칸의 통일전쟁을 선언하는 전쟁 화신 '검은 깃발'이 탄 말은 '컹컹' 콧김을 내뿜으며 오른쪽 앞발로 땅을 리듬감 있게 긁었다.
말 50여마리가 동시에 달리며 펼치는 전투 장면에선 뛰던 말들이 갑자기 활에 맞은 듯 옆으로 쓰러져 죽은 척 하다가 고삐를 슬쩍 당기자 천연덕스럽게 일어났다.
말 위에서 활을 쏴 과녁에 맞히고사랑하는 여인의 스카프를 땅에서 주워 올리고 다섯 명이 '인간 탑'을 쌓는 어려운 장면들이 말과의 협동 아래 숨가쁘게 이어졌다. 굵은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웅장한 음악과 어우러져 사극의 한 장면이 제주도로 뛰쳐나온 듯 생동감이 넘쳐났다.
리허설이 끝난 후 땀에 젖은 말을 쓰다듬던 테무친 역 바산도치 갈후씨는 "몽골 사람 대부분이 네 살 때부터 말을 타기 때문에 운전하는 것보다 말 훈련시키는 걸 더 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게 빨리 달리는데 다치거나 다른 말과 부딪칠까 무섭지 않은가" 하는 질문엔 "내 눈과 말 눈을 합쳐 눈이 네 개인데 뭐가 걱정인가"고 답했다. 그를 태운 미국 출신 말이 공연장 담에 페인트로 그린 몽골 초원과 그 뒤에 부드럽게 솟은 한라산을 번갈아 쳐다보곤 어서 달리자는 듯 '흐히힝' 콧김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