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꽝나무·구지뽕나무… 거참, 이름 한번 희한하네

by조선일보 기자
2007.12.20 11:14:00

매달 숲 지도를 보내드립니다 ''12월 목포 유달산''

[조선일보 제공]

전라남도 목포 유달산(儒達山)에 오르면 이 말이 나올 법 하다. 숲이 꼭 전라도 사투리처럼 흥겹고 발랄하니까. 썰렁하고 추운 겨울 숲을 예상하고 오른 등산길이지만,

열매의 생김새가 독특하거나, 이름이 웃기고 신기한 나무들이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나무 쉽게 찾기’의 저자 윤주복씨와 함께 유달산 산책을 떠나봤다.


유달산 노적봉 안내소에서 숲으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윤주복씨는 “여기 나무들이 이름 값을 좀 한다”며 제일 처음으로 ‘간지럼나무’를 가리켰다. 껍질이 매끈한 것이 꼭 사슴 뿔처럼 보이는 나무, 흔히 ‘배롱나무’라고도 불린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지?

“보세요….” 윤주복씨가 나무 몸통을 손가락으로 간질이자, 나뭇가지들이 누가 흔들기라도 한 양 물결치기 시작한다. “꼭 사람처럼 간지럼을 타잖아요.” 과연 이름 값 하는 나무였다.

조금 더 올라가면 나오는 정자 유선각 앞엔 ‘꽝꽝나무’가 서 있다. 옛날에 사람들이 군불을 땔 때 이 나무를 종종 땔감으로 썼는데, 불 속에 넣으면 나무가 ‘꽝꽝’ 소리를 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단다. 마른 가지를 꺾으면 ‘탁탁…’하고 회초리 때리는 소리가 난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나무다.


‘사위질빵’ 나무도 눈에 띈다. 미아나리재비과의 덩굴식물인데, 줄기가 무척 약해 손으로 건들면 툭 하고 끊어진다. 이 약한 줄기 덕에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사위가 무거운 지게 짐을 지는 게 보기 안쓰러워서 장모가 일부러 이 덩굴로 지게 끈을 묶어줬대요. 끈이 약하니까 짐을 조금만 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며느리밑씻개’ 같은 풀은 질기고 억척스러운데 정작 사위질빵은 약해빠진 식물이라니, 기분이 어째 좀 이상했다.

산 정상에서 만난 ‘구지뽕나무’도 빼놓을 수 없다. 뽕나무도 아닌데, ‘굳이 뽕 나무’인 척 하는 나무라는 뜻이란다. 아닌 게 아니라 구지뽕나무 잎도 누에를 키우는 재료로 쓰인단다.

“그런데 뽕나무가 아니라 구지뽕나무를 먹여 키운 누에가 만드는 실은 더 질기대요. 뽕나무에는 역시 못 미치는 모양이에요.” ‘원조’를 따라잡는 건 역시 힘들다.



열매나 씨앗이 꽃보다 화려하거나, 특이한 구조로 눈길을 끄는 나무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나무가 ‘멀구슬나무’. 남부 해안가에서 볼 수 있는 나무로, 손가락 마디만한 노란 열매가 크고 예쁘다. 열매 속 씨앗을 염주로 만들었다 해서 ‘목구슬나무’로 부르던 것이 ‘멀구슬나무’가 됐다고. 이 열매를 옛날 사람들은 옷장에 넣어 방충제 대신 쓰기도 했다.

‘장구밥나무’의 열매는 더 특이하다. 빨간 구슬이 꼭 두 개씩 붙어 있다. 동그란 녀석 둘이 맞붙어 있는 모양이 장구를 닮았다 해서 장구밥나무로 불린다.

▲ 유달산 정상. 목포 시내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개잎갈나무’와 ‘물푸레나무’는 나무 주위에 떨어진 씨앗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식물들. 개잎갈나무는 열매가 익어서 벌어지면 어느 순간 ‘툭’하고 부서져 폭발한다. 이렇게 사방으로 터져나간 씨앗으로 나무가 번식을 하는 것. “이것 보세요, 꼭 나방 날개 닮았어요….” 과연 나무 아래에 열매가 부서져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나방 날개 같은 모양으로 흩어져 있었다.

물푸레나무의 씨앗도 날개를 달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런데 어째 날개가 신통치가 않아서 꼭 이 나무 바로 주변에만 수북하게 쌓여있다. 나름 애 써서 날아가려고 했으나, 능력이 딸리는 씨앗들인 셈이다. “그래도 번식을 잘하는 거 보면, 팔자 하나는 잘 타고 난 나무인 것 같다”라며 윤주복씨가 웃었다.

작살나무도 한번 들여다 볼 만하다. 겨울눈 세 개가 나란히 붙어있는데 꼭 말 그대로 작살, 혹은 삼지창처럼 생겼다. 가운데 눈 옆의 ‘곁눈’ 두 개는 자동차로 치면 ‘비상용 타이어’다. 가운데 눈이 제 기능을 못할 때를 대비해 알아서 ‘보험’을 들어놓은 셈이다.

유달산 자생식물원에서 만난 튤립나무는 모양부터 독특하다. 나무에 잔뜩 매달린 열매들이 말 그대로 활짝 핀 튤립처럼 생겼다. “꽃이 없어도 열매가 꽃 노릇을 하니 겨울에도 볼 만하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숲 속엔 관상용(觀賞用)으로 심어놓은 나무들도 많았다. 겨울에도 푸른 상록수가 대부분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광나무’인데, 까만 열매가 수북이 매달린 것이 ‘쥐똥나무’와 매우 흡사하게 생겼다. 나뭇잎이 반짝반짝 윤이 나서 남쪽에선 담장에 많이 심는다고.

‘피라칸타’도 많다. 빨간 열매가 한 겨울에도 소담하니 예쁜데, 꽃보다 열매가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한 식물이라고.

8개의 손가락을 활짝 펼친 것 같다는 ‘팔손이’도 쉽게 볼 수 있다. 넓적한 식물 잎이 겨울에도 푸르러서 남쪽에선 관상수로 선호하는 식물 중 하나다.


깜짝 놀랐다. 겨울눈이 난 자리의 잎자국이 꼭 사람 얼굴 형상을 한 나무가 있다. ‘소태나무’가 대표적. 이름 그대로 나무를 꺾어서 혀에 갖다 대면 소태처럼 쓴 맛에 얼굴을 절로 찡그리게 되는 나무다. 한데, ‘맛’보단 ‘모양’이 더 신기했다.

“겨울눈 입자국에 점 세 개가 찍혀 있는 거 보이세요? 꼭 사람 얼굴 같지 않나요?” 윤주복씨의 설명을 듣고 가만히 들여다 보니 정말 웬 아이의 얼굴이 오롯이 박혀 있는 게 눈에 띈다. 멀구슬나무도 마찬가지. 잎자국 모양이 사람 얼굴 같기도 하고 원숭이 얼굴 같기도 하다. “맞아요, 그래서 일본에선 원숭이 얼굴 나무라고도 부르죠.” 참말이지 이 유달산의 나무들, ‘징하게’ 특이하고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