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환 "상법 개정, 부작용 고려해야"…뒤늦은 입장에 '혼란'

by박순엽 기자
2024.11.24 14:06:30

사실상 반대 의사…대통령 발언 이후 11개월만
“지배구조 개선 방법, 상법 개정뿐인지 짚어봐야”
“충실 의무 대상 확대 시엔 기업가치에 마이너스”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에 사실상 반대한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자본시장에 끼칠 부작용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상법 개정 의지를 밝힌 지 1년 가까이 된 시점에야 금융당국이 처음으로 상법 개정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대통령의 의지 피력 이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여러 번 강조한 상황에서 뒤늦게 금융 당국이 반대 의사를 드러내며 혼선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에서는 상법 개정을 반대하는 긴급 성명을 내놓았을 정도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증시 상황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김 위원장은 24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자본시장 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장으로서 기업 지배구조가 더욱 투명하게 돼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면서도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방법이 상법 개정뿐이냐고 하는 부분에선 짚어봐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상법 개정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상법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법리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기업 경영이나 자본시장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현재 이사가 회사에 대해 충실 의무를 다하게 돼 있는데, 주주까지 포함하면 의사결정이 굉장히 지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은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 의무를 규정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정문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은 지난 19일 상법 제382조의3에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하는 데 총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내용의 2항을 추가한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위원장은 충실 의무 대상을 확대하는 데 대해 “이를 빌미로 해서 외국 투기자본이 과도하게 요구하거나 경영권을 위협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그럼 기업들이 회사 자원을 쓸 수밖에 없어 기업가치엔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다”며 “투기자본들이 들어왔다가 단기적으로 이익을 빼먹고 나가는 과정에 주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상법 개정의 부작용을 피하면서 실효적인 효과를 낼 ‘맞춤식 개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합병 시 기준주가로 산정하던 합병비율 방식을 폐지하고, 이사회가 주주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공정한 합병가액을 정해 외부 평가를 받은 뒤 공시하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식이다.

또 분할 시엔 기업의 우량한 부분을 자회사로 분할해 상장하면 기존 주주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 만큼 자회사 상장 시 기존 주주에 대해 자회사 주식을 우선 일정 부분 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맞춤식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게 상법의 일부 부작용을 피하며 일반 투자자를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김 위원장이 공개 석상에서 상법 개정에 대한 견해를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그는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상법 개정과 관련한 질문에 “조금 더 논의해야 한다”며 “법을 개정하려면 이사회가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까지 부담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맞느냐는 문제 제기에 대해 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이날 ‘증권시장안정펀드(증안펀드)’ 등 국내 증시 폭락 시 대처할 수 있는 안전판을 마련해 둔 상태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당시 증시가 위축됐을 때 썼던 수단들은 여전히 유효하고,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면서도 “증안펀드는 주가 부양 수단이라기보다 안전판 역할이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증안펀드는 증시 안정을 위해 증권사·은행 등 금융회사와 관계기관들이 공동으로 마련하는 기금으로, 주가 급락이 금융 시스템의 위기로 번지지 않게 하는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에선 과거 몇 차례 증안펀드를 조성했던 경험이 있고, 가장 최근인 2020년 3월엔 코로나19 사태로 증시가 폭락했을 때 조성했으나 주가가 반등하면서 투입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