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동욱 기자
2011.10.04 09:20:35
견본주택 없고 접수기간 넘긴뒤 선착순 분양
투자가치 파악힘들어 인근단지 조건 살펴야
[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중견 건설업체 K사는 최근 경기도 광주시에서 아파트 청약을 진행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모집가구 120가구 가운데 청약신청을 한 인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말 그대로 0명이다. 분당과 가까워 입지조건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청약률 제로’는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건설사는 청약성적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말부터 본격적인 분양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 분양공고를 낸 시점은 지난 7월1일. 특별한 홍보도 하지 않던 이 건설사는 3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다시 분양에 나섰다.
이른바 ‘깜깜이 분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깜깜이 분양은 견본주택을 열지 않은 상태에서 조용히 청약접수기간을 넘긴 뒤 선착순 청약을 받는 일종의 편법 분양 방식. 청약제도가 바뀐 이후 지방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청약율 제로(0)’를 기록한 대부분의 아파트는 깜깜이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이런 방식은 분양이 시원찮은 지방에서 많이 이용됐지만, 최근에는 수도권에서도 볼 수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실제 이달 초 경기도 안양에서 청약을 진행한 N사도 청약마감 후 선착순 분양에 들어갔다.
이처럼 건설사들이 깜깜이 분양을 택하는 이유는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홍보력을 집중하기 위해서다. 본청약에 홍보를 집중해봐야 미분양이 뻔한 상황에서, 차라리 실수요자에게 집중해 계약률을 높이겠다는 셈법이다.
어차피 대거 청약미달이 예상되는 법정 청약기간에 마케팅을 하는 것보다 조용히 법정 절차를 넘긴 다음 전량을 미분양 처리해 새롭게 선착순 공급하는 게 휠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청약률 제로는 대규모 미분양이란 오명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본청약에서 대거 미분양이 날 경우 계약률도 낮아진다. 이럴 경우 미분양이란 오명 때문에 추가모집도 힘들어진다”며 “하지만 깜깜이 분양 방식을 이용하면 현장에서 수요자를 설득해 곧장 계약까지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편법분양은 자칫 소비자들의 피해를 가져올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청약률이 높으면 그만큼 투자가치가 높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청약률 자체가 제로면 정확한 판단을 하기가 어려워 신중을 기해야 한다.
박상언 유앤알 컨설팅 대표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확한 사전정보를 파악하기 힘들어 투자가치를 결정하기 어렵다”며 “분양관계자의 말만 듣고 투자에 나섰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본청약 성적이 좋지 않으면 건설사가 계약금 할인이라든지, 금융혜택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깜깜이 분양은 소비자가 원하는 동·호수 지정 등을 내세워 혜택 폭을 줄이는 경우도 있다”며 “인근 분양한 단지와 분양조건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