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남으로 살던 아버지 빚까지 갚아야 하나요[양친소]
by송승현 기자
2024.09.21 07:00:00
[양소영 법무법인 숭인 대표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안미현 법무법인 숭인 대표변호사]
| 양소영 법무법인 숭인 대표 변호사. △24년 가사변호사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사단법인 칸나희망서포터즈 대표 △전 대한변협 공보이사 △‘인생은 초콜릿’ 에세이, ‘상속을 잘 해야 집안이 산다’ 저자 △YTN 라디오 ‘양소영변호사의 상담소’ 진행 △EBS 라디오 ‘양소영의 오천만의 변호인’ 진행 △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출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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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지내시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자식 된 도리는 해야겠기에 아버지의 마지막을 챙겨드렸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때 집을 나가셨습니다. 어린 나이였는데도 아버지가 집을 나가서 다행이라 생각할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어머니에게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둘렀고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으로 늘 어머니를 무시하고 힘들게 했습니다. 그 후로 어머니 홀로 저를 힘들게 키우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의 사정을 알게 됐습니다. 함께 살던 여자와는 오래전 헤어졌고 변두리 작은 집에서 월세를 얻어 지내셨는데,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아버님이 사시던 방으로 가보니 달리 정리할 세간도 없었고 남은 재산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1년쯤 지났을 때, 법원에서 승계집행문 등본이라는 서류가 도착했습니다. 내용을 보니, 아버지가 생전에 지인에게 돈 3000만원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 대여금 판결을 받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상속인인 저의 재산에 강제집행을 하겠다는 겁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평생 남처럼 살던 아버지의 빚까지 제가 갚아야 하나요?
상속포기와 한정승인이라는 제도입니다. 상속포기는 상속인으로서의 자격을 아예 포기해 버리는 것으로,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 즉 피상속인이 사망했다는 사실과 자신이 상속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가정법원에 상속포기의 신고를 해야 효력이 발생합니다. 한정승인도 같은 기간 내 가정법원에 신고해야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같지만, 아무것도 상속받지 않는 상속포기와 달리, 상속받은 재산 한도에서 피상속인의 채무를 갚을 것을 조건으로 상속을 받는 제도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사연에서처럼 판결문을 받은 후, 채무자인 아버지가 사망해 자녀인 사연자가 채무를 상속받은 것과 같이 채권자나 채무자의 지위가 다른 사람에게로 승계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법원은 채권자나 채무자의 지위가 승계되었음이 명백하게 증명된 때에는 기존의 확정 판결문 등 집행권원에 승계집행문을 부여하는데요. 사연의 채권자 또한, 판결문상 돈을 갚아야 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아버지의 지위를 승계한 상속인인 사연자의 재산에 강제집행을 하기 위해 승계집행문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보통 승계집행문 등본을 받고서야 사연자처럼 피상속인에게 채무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연자가 자신의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방어하려면, 아버지에 대한 판결문이나 그에 대한 승계집행문 둘 중 하나를 다투어야 하는데, 사연에서는 승계집행문에 관해 다투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보입니다.
사연자는 승계집행문을 부여한 법원에 승계집행문부여 이의신청 또는 이의의 소를 제기해 승계집행문이 부여될 때 증명된 조건의 성취나 승계 등의 사유를 다투어 승계집행문 부여가 위법하다는 점을 주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연자가 이미 상속포기를 한 상태였다면, 사연자는 승계집행문부여 이의의 소를 제기해 상속인이 아닌 사연자에 대해 강제집행을 허용한 승계집행문 부여는 위법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승계집행문을 취소시키고 강제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연의 경우, 사연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사연자는 승계집행문 등본을 송달받고서야 뒤늦게 아버지의 채무를 알게 되었으므로 특별한정승인을 통해 승계집행문부여를 다툴 이의사유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특별한정승인이란 중대한 과실 없이 민법이 정한 상속포기나 한정승인 신고 기간 내에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단순승인을 한 상속인이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3개월 내에 하는 한정승인을 말합니다. 특별한정승인 신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왜 채무를 알 수 없었는지, 왜 지금 와서야 고인의 채무를 알게 됐는지’에 대한 증명인데요. 통상 ‘고인과는 오래전부터 왕래가 끊겼다’거나 ‘상속인이 됐는지 몰랐다가 갑자기 알게 됐다’는 사유들을 주장합니다.
사연자는 안심상속원스톱 서비스나 상속인금융거래조회 서비스 등을 이용해 아버지의 상속재산과 상속채무를 확인한 후, 아버지의 채무가 과다하고, 사연자와 아버지는 평소 왕래가 전혀 없었기에 아버지가 지인에게 돈을 빌렸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특별한정승인 신고를 해야 합니다. 특별한정승인 신고와 승계집행문 부여 이의의 소의 관할법원이 다르기 때문에, 사연자는 특별한정승인 신고가 수리되면 해당 심판문 등을 승계집행문부여 이의의 소를 제기한 법원에 신속하게 제출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연자가 승계집행문부여 이의의 소를 제기하였다거나 특별한정승인 신고를 했다는 것만으로는 강제집행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미 강제집행이 시작되었다면 사연자는 이의신청이나 이의의 소가 확정될 때까지 집행을 막아달라는 의미의 강제집행정지신청을 반드시 따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연자의 고유 재산에 대한 집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