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산 원유' 1년 만에 150% 급증… 정유업계 ‘원유다각화’ 드라이브
by김정유 기자
2019.07.21 12:14:10
1~5월 미주산 원유 비중 15%, 전년比 2배 이상 상승
美셰일오일 확대로 미주산 원유 가격 저렴해져
정유사 원가절감 활발, ‘중동리스크’ 대비 선제적 도입
| 2018년 및 2019년 1~5월 미주지역 원유 도입량 추이. (자료=대한석유협회, 단위=천 배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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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국내 정유업계가 미주(美洲)산 원유 도입량을 1년 만에 150% 이상 확대하며 원유 다각화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간 의존도가 높았던 중동산 원유 비중을 조금씩 낮추는 한편 미국 셰일오일(암석층에서 채취한 원유) 생산 확대로 최근 가격이 저렴해진 미주산 원유 도입을 늘리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이란간 갈등 고조 등 반복되는 중동산 원유의 지정학적 위험요소도 정유사들이 선제적인 원유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는 이유다.
21일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5월까지 우리나라로 들어온 미주산 원유는 총 6998만1000배럴로 전년 동기(2794만3000배럴)대비 150%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원유 도입량(4억5854만6000배럴) 중 미주산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도 6%에서 15%로 9%포인트나 상승했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기준 미주산 원유 도입 비중 역시 처음으로 두 자릿수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올 1~5월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은 73.2%로 전년 동기(76.3%)대비 3.1%포인트 감소했다. 우리나라의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은 2011년 87%까지 찍은 바 있다.
올 들어 우리나라의 미주산 원유 도입 비중이 대폭 확대된 것은 미국 셰일오일 생산 확대에 따른 정유사들의 원유 다각화 행보와 맥을 같이 한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최근 미국 셰일오일 생산이 늘면서 과거 중동산보다 더 비쌌던 미주산 원유가 저렴해지자 정유사들의 도입이 늘었다”며 “그간 정유사들이 중동산 원유를 들여왔던 건 저렴했던 가격 때문인데 이런 장점이 사라진데다 정유사들의 원유 도입 다각화가 함께 이뤄지면서 미주산이 확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중동산 원유(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62.14달러, 미주산 원유(WTI유)는 55.30달러로 양 원유간 6.84달러나 가격 차이가 난다. 지난해 같은 날과 비교하면 당시엔 WTI유(배럴당 68.76달러)가 두바이유(69.68달러)보다 오히려 더 비싸게 거래됐다. 중동산과 미주산 원유간 스프레드(가격차이)가 이처럼 변화하는 상황에서 미주산 원유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더불어 중동산 원유의 고질적인 지정학적 위험요소 발생에 대한 두려움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미국과 이란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중동산 원유의 주요 수송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정유사들은 올초부터 중동지역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선제적으로 미주산 원유 도입 확대를 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올초 이란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컸던 만큼 선제적으로 미주산 원유를 확대해왔다”며 “일반적으로 원유 수송이 50~60일 정도 걸리는만큼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정유사 입장에선 손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도 “중동산 원유 수급의 불확실성은 하루 이틀일이 아니어서 원유 다각화에 힘을 쏟고 있는 과정”이라며 “미주산 원유를 늘리는 등 다각화를 통해 국제원유 가격 변동에 대한 ‘범퍼’ 역할을 강화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정유업계는 올 상반기 정제마진 악화로 최악의 상황을 보냈다. 원유 다변화가 당장의 실적에 큰 영향을 주긴 힘들지만 원가절감 측면에서 일정 부분 수익성 악화를 상쇄하는 역할을 한다. 향후에도 여전히 의존도가 높은 중동산 원유 도입을 단계적으로 낮추고, 원가절감에 도움이 되는 원유 다각화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원가를 절감하는 만큼 수익을 내는 정유업계의 특성상 원유 다변화가 수익성 악화 등을 일부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며 “2000년대 이후 중동산 원유 수급의 불확실성을 몸소 체험해 왔던 만큼 정유업계는 여러모로 원유 도입 다변화에 더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SK에너지 울산 콤플렉스 전경. (사진=SK에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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