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Crisis)③위기감지 시스템 여전히 '먹통'

by좌동욱 기자
2009.09.14 09:55:03

<2부> 남겨진 과제들
리먼 사태 한달 후에야 심각성 인지
위기대응 시스템 보완..금융시스템 개편 논의 필요
은행, 투기세력에도 외화대출..외환제도 정비 `시급`

[이데일리 좌동욱 민재용기자]

작년 9월9일 밤 외신을 타고 전해진 전광우 전(前) 금융위원장의 한마디 발언은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그리고 이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결정타`였다.

이 소식에 당일 리먼브라더스 주가는 45% 폭락했고, 산업은행을 대신할 `구세주`를 찾지 못한 리먼브라더스는 엿새 뒤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산업은행의 인수 포기 결정에는 한국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개입됐다. 하지만 이런 결정이 앞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되고, 다시 한국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정부 관료나 전문가들은 없었다.



한국 정부가 위기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한달 후부터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강만수 (前 재정부) 장관이 작년 10월 중순 IMF 연차총회 참석차 워싱턴과 뉴욕을 방문한 후 금융위기의 심각성을 확신할 수 있었다"며 "그 이후로 보다 과감한 대책들이 나왔다"고 전한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도 "10월 들어 환율이 폭등하기 시작하자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했다"고 말한다.

실제 한국의 본격적인 위기 대책은 10월 하순부터 나왔다(). 위기를 인식한 이후 대책은 신속했지만, 위기를 사전 예측하고 대응하는 시스템에는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위기 당시 경제부처간 의사소통 문제가 정부 대응의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청와대 관계자는 "위기 당시 회의의 70%는 강만수 장관, 나머지 15%는 박병원 수석(경제수석)의 발언이었다"며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필요한 말만 했고, 전광우 금융위원장 발언은 전체의 5%도 되지 않았다"고 전한다. 이런 불균형은 당시 정부 정책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현재 정부의 위기경보·대응 체계는 재정부, 금융위, 한국은행 등 정부 기관별로 나눠져 있다. 정부는 위기 후 경보 시스템에 속보 데이터를 추가하고, 모델을 정교화하는 작업으로 시스템을 보완했다고 한다. 또 정부 기관 수장들이 참석하는 청와대 서별관 회의나 비상경제대책회의, 차관 이하 실무회의 등으로 부처간 이견을 조율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국내 금융정책·감독 체제 개편 문제를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금융위로 집중된 금융정책(옛 재경부 금융정책국)과 금융감독의 분리, 국내금융과 국제금융의 통합, 한국은행의 기능·위상 재정립 등 근본적 문제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진원지인 미국이나 영국은 이미 범 정부 차원의 금융시스템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위기 후 세계 각국이 시스템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과거와 다른 형태의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며 "특히 미국과 영국은 금융 감독체계 개편 문제도 상당 부문 논의를 마쳤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 올해 초 국회 주도로 한국은행법 개정을 추진하다, 정부 기관별, 국회 상임위별 입장차로 논의를 중단했다. 정부는 대신 대통령 자문기구 내 한은법 개정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정부 입장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당시 정부는 "국가 백년대계에 부합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겠다"(윤증현 재정부 장관)고 공언했으나 실제 TF는 금융체계 개편안을 논의 대상에서 배제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거시 금융감독 정책을 G-20 정상회의, 금융안정위원회(FSB) 등 국제사회 논의에 발맞춰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이종구 금융위 상임위원은 "현재 거시 금융감독 정책 개선안은 크게 자본 건전성 규제와 회계 투명성 강화 등 두가지 파트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자본 건전성 규제는 현행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 대신 보통주 중심의 은행 자본을 확대하는 방안, 호경기에 자본을 더 쌓아 경기 순응성을 완화하는 방안, 레버리지 비율을 일정하게 제한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회계 투명성 개선안은 복잡한 파생상품 회계를 회계장부에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문제와 위기를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됐던 시가평가제도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가들도 정부가 글로벌 정책 방향에 보조에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논의와 별도로 한국의 경우 현행 외환시스템은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외화유출이 확대되고 환율이 급등했던 것이 위기를 확대시킨 가장 큰 요인"이라며 "이 같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당시 은행들은 환차익을 노린 투기세력들에게 까지 무분별하게 외화대출을 취급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위기가 발생해 시장이 크게 흔들렸다"고 꼬집었다. 그는 "외화만큼은 국가적 관점에서 관리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