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6.07.21 09:20:27
여성 구매결정권 커져 주방용품·아파트광고까지 관능적 남성 수시로 등장
[조선일보 제공] 남자가 누워 있다. 한가로운 자세로 천천히 입안에 국수 한 가락을 흘려 넣고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의 근육 잡힌 구릿빛 상체만이 어둠 속에서 두드러질 뿐.
남자의 관능이 광고의 단골 소재로 소비되고 있다. 여성의 관능미가 광고계에서 전통적으로 선호하던 소재였다면, 이제는 남자다. 남자의 벗은 몸과 아무 맥락이 닿지 않는, 때로는 남성과 상관 없는 여성용 제품 광고에조차 웃통을 벗은 근육질 남성이 수시로 등장한다. 여성 소비자의 성적(性的) 팬터지를 위해 ‘대상화’ 된 셈. 과거 남성이 타깃층인 자동차 광고나 술 광고가 늘씬한 미녀를 등장시키던 것과 비슷한 이치다.
여성의 소비성향과 구매 결정권이 더욱 강화되면서 ‘남성을 벗겨 여성의 지갑을 열겠다’는 전략이 더욱 노골화되고 있는 셈. 남성의 관능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섹스 앤더 시티 세대’의 출현과도 관련이 있다. 제일기획의 이정은 차장은 “경제력 있는 30대 싱글 여성이 늘어나면서 패션몰 광고에 주지훈이 웃통 벗고 나오는 식으로 남성을 등장시켜 그들의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광고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중장년 여성을 타깃으로 한 광고에서도 남성의 관능은 도드라진다. ‘e-편한세상’의 TV광고는 커다란 욕조에 혼자 몸을 담그고 미소 짓는 남성을 화면 중앙에 배치했고, ‘아이파크’ 광고에서도 역삼각형 몸매의 남성이 전면에 등장한다.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내세웠던 아파트 광고의 전형은 이미 깨졌다.
심리학자 심영섭씨는 “여성의 경제권이 커지고 여성에게만 집중됐던 ‘성 상품화’가 남성쪽으로 확장되면서, 여성들이 성의 주체로 그려지기 시작했다”며 “아직은 남자의 몸을 시각적으로 ‘감상’하는 차원이지만 조만간 더 적극적으로 성적 팬터지를 ‘표현’하는 광고나 영화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