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아티스트다] 가수 솔비 "그림 안에 나 있다"
by김인구 기자
2013.09.06 09:20:33
치료목적 취미가 ''화가 권지안''으로
연예계활동 중 생긴 우울증 극복
첫 전시 때 판매제의 정중히 사양
"스스로 당당해질 때까지 정진할래"
| 화가로 활동 중인 가수 솔비(사진=김정욱 기자 98luk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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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인구 기자] 올해 초 서울 중구 수하동 미래에셋증권 센터원빌딩에서 열린 ‘프로 보노’ 자선전시회에서 가수 솔비(29)의 그림을 처음 접했다. ‘신데렐라의 뇌구조’라는 제목이었다. 소재나 색감이 독특했다. 아마추어답지 않은 ‘포스’가 전해졌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도 솔비의 그림 앞에서 한참 동안 머물렀다. 일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을 요모조모 뜯어봤다.
가수에서 화가로의 변신에 들어간 솔비를 최근 강남의 한 작업실에서 만났다. 또 다른 전시회에 출품하기 위해 새로운 작업에 빠져 있었다. 요즘은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갑자기 늘어나서 오랜만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살짝 지친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림 이야기를 꺼내자 금방 눈이 반짝반짝하며 생기가 돌았다.
▲부메랑 돼 날아온 ‘솔직한 성형고백’
요즘 솔비는 KBS 2TV ‘해피선데이-맘마미아’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출연해 배꼽 잡는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한번은 전남 화순에 있는 신인배우 이지훈의 외가를 방문하는 이야기에서 시청자들을 폭소케 했다. 저녁반찬용으로 채소를 구해오는 미션을 수행하던 중 논의 벼를 보고 “저게 파밭이야?”라고 물었다가 어머니에게까지 호된 질책을 당했다. 민망하고 어이없는 순간이었으나 이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솔비의 백치미에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었다.
2006년에 그룹 타이푼 멤버로 데뷔한 솔비는 그동안 각종 예능에서 솔직한 입담으로 화제를 모았다.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질문과 답변으로 인기를 끌며 예능의 히로인이 됐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벽에 부딪쳤다. 답답함이 느껴졌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들이 과연 무엇인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연예계 활동을 한 지 어느덧 8년째다. 그런데 슬슬 슬럼프가 오더라. 늘 나만 솔직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방송에서 꾸미지 않는다고 했던 모습이 오히려 잘못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깨닫고 고민에 빠졌다. 정체성의 혼란이 생겼다. 우울증도 있었던 것 같다.”
솔비는 한동안 설화와 루머에 시달렸다. 너무나 쉽고 ‘쿨하게’ 성형을 인정했던 게 ‘성형중독’이라는 비난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솔직함이 되레 오해를 낳고 자기만의 세상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이걸 풀지 않으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우울증 끝에서 만난 그림
그래서 잠시 방송을 접고 이것저것 변화를 시도했다. 운동 삼아 등산을 했다. 한번은 아주 절망적인 심정으로 지리산에 올랐는데 정상에 서보니 의외로 용기가 솟았다. 죽을 때도 안 됐으니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가수활동 중에도 못 해본 피아노나 드럼을 배웠다. 그러다가 지인의 소개로 미술학원에 가게 됐다.
“미술은 내가 힘들었을 때 여러 가지 다양하게 시도했던 것 중 하나였다. 학원에서 한 미술선생님을 만났는데 ‘왜 그림을 그리고 싶냐’는 질문에 왈칵 눈물이 솟더라.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말이 아니라 그림으로도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걸 체험했다. 마음의 치유가 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후로는 청담동 집에서 미술학원이 있는 응암동까지 거의 매일 ‘출퇴근’하듯 다녔다. 너무 즐거웠고 어느새 그를 누르고 있던 스트레스를 하나둘씩 벗어버릴 수 있었다. 다양한 시도와 치료목적의 그림 그리기가 캔버스 위의 작품으로 발전한 건 그 다음이다. 한 지인의 생일을 맞아 선물을 고심하다가 그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 캔버스에 그린 자신의 첫 작품이자 직접 만든 선물이 됐다.
그때 그린 그림이 ‘방황’이다. 캔버스를 반으로 갈라서 오른쪽은 검게 칠했다. 그리고 나머지 왼쪽에는 별이 빛나는 밤의 도시를 묘사했다. 인적이 끊긴 빌딩 사이에는 오로지 아이 한 명이 외로이 서 있다. 그 아이는 물론 솔비 자신이었을 것이다.
“미술선생님이나 주변에서 좋은 충고를 해주는 작가들이 내 그림 속에는 항상 솔비가 있다고 한다. 나는 그냥 그때 내가 갖고 있던 느낌을 표현했을 뿐인데 그런 말을 듣고 나중에 다시 보니 정말 내가 있는 것 같더라. ‘방황’을 그렸던 때가 사실 내가 고민을 거듭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가수 솔비에서 화가 권지안으로
이후 자신감을 얻은 솔비는 권지안이라는 본명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첫 번째 전시회는 지난해 7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라빌드팡에서 열었다. ‘욕망이라는 또 다른 이유’란 제목을 달았다. 총 12점을 내걸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했는데 반응이 예상 밖으로 괜찮았다. 판매를 겸한 전시회이긴 했지만 판매하진 않았다. 마치 내 일기장을 내어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부끄러웠다. 한번은 홍콩 쪽의 컬렉터가 ‘방황’을 보고 꽤 높은 가격을 제시했으나 정중히 거절했다. 조금 더 공부하고 나중에 판매를 해도 될 것 같다.”
첫 전시회의 성공에 힘입어 두 번째 전시회는 같은 해 9월 서울 종로구 궁정동 고이갤러리에서 앙코르 형식으로 개최했다. 역시 ‘내 아이’ ‘신데렐라의 뇌구조’ ‘현주소 또는 삐딱선’ 등을 선보였다.
화가 권지안으로서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캐나다 출신의 롭 곤살베스다. 곤살베스는 초현실주의 작가로 유명하다. 뛰어난 상상력에 기반한 동화 같은 그림이 특징이다. 자칭 ‘매직 리얼리즘’이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니 솔비의 화풍도 초현실주의를 닮아있는 듯하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자신의 심리상태를 반영한 그림이 많이 보이는 이유다.
지금까지 그린 그림은 총 50여점. 화가 권지안으로서는 이제 시작이나 다름없다. 내달에는 새로운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아마도 ‘여자’라는 타이틀의 개인전이 될 것 같다. 솔비 자신의 다이어리 같은 전시회다.
하지만 솔비의 꿈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가수·화가에 이어 연기자와 작가, 콘텐츠전문가로서의 길도 꾸준히 준비하고 있다. 솔비는 내년 2월 용인대 뮤지컬학과를 졸업하는 대로 대학원 진학도 계획하고 있다. 그림을 포함한 콘텐츠를 공부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학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제는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도전하는 게 재미있다. 욕심이 너무 많은가 보다. 그림에도 더욱 정진해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연예인이니까 한번 해보는 것 아니냐는 얘기는 듣지 말아야지. 그럼 나중에는 당당하게 판매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