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다운사이징에 배기음 반토막..포르쉐 718 박스터 GTS

by남현수 기자
2019.03.18 08:36:10

[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남현수 기자= 포르쉐 스포츠카를 대표하는 모델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911을 떠올리는 경우가 가장 많을 것이다. 911 이외에도 2인승 컨버터블 박스터와 쿠페 카이맨과 같은 스포츠 모델이 있다. 요즘 포르쉐 인기에는 이런 스포츠카가 아닌 SUV(카이엔, 마칸)와 4도어 세단(파나메라)이 이끌고 있다. 사실상 포르쉐 이미지를 대변했던 스포츠카 판매량은 전체의 30%도 안 될 정도다.

SUV던 4도어 세단이던 포르쉐가 만들면 모두 한결 같은 DNA를 지니고 있다. 어떤 경쟁차종보다도 고속으로 주행이 가능한 스포츠 성능이다.

911은 엔진이 리어에 위치하고 뒷바퀴로 굴리는 RR 구동 방식이다. 이런 이유로 앞뒤 무게 밸런스에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이런 물리학적 한계를 포르쉐는 놀라운 기술력으로 극복해낸다. “포르쉐는 외계인을 고문해서 차를 만든다”는 웃지 못할 소문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에 시승한 박스터는 911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신체조건을 타고났다. 스포츠 주행에선 차체 밸런스가 중요한 경쟁 요소 가운데 하나다. 균형잡힌 밸런스를 위해선 무거운 엔진이 차체 중앙이나 가급적이면 아랫단에 위치하는 게 유리하다. 박스터는 이런 잇점을 살려 만든 미드십 엔진에 후륜으로 굴리는 MR 모델이다. 게다가 소프트탑이 달린 2인승 로드스터다. 바람을 쐬면서 기분을 내고 싶을 때는 9초면 전개되는 소프트톱을 열면 된다. 또다른 신세계를 만날 수 있다.

박스터는 좋은 신체 조건을 갖췄음에도 911이라는 걸출한 형님 때문에 4기통 엔진에 만족해야 한다. 4기통이라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GTS라는 뱃지를 단 박스터 최상위 모델은 성능이 한 수 우위다. 시동을 걸면 우선 우렁찬 엔진음과 배기음이 운전자를 흥분시킨다. 포르쉐 스포츠카는 모두 엔진이 뒤에 달려 있어 운전석에 앉으면 묘한 느낌이 든다.

현재 판매되는 718 박스터는 2016년 출시됐다. 당시 6기통 자연흡기에서 4기통 터보로 엔진을 다운사이징 것은 포르쉐 스포츠카 마니아들로부터 큰 질타를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배기음은 역시나 별로다. 억지로 소리를 키워 듣기 거북하게 느껴진다. 심하게 말하면 현대기아차 4기통 터보 엔진을 튜닝한 소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포르쉐는 프리미엄 블랜드 답게 풀모델체인지를 하면서도 크게 디자인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 포르쉐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박스터 1세대부터 현행 4세대 모델까지 디자인의 변화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포르쉐는 전통적으로 큰 변화없이 디테일을 손보는 브랜드다. 디자인의 변화는 소소하지만 포르쉐 마니아는 물론 소비자들을 끌어당길 충분한 매력을 갖추고 있다. 빨간색 스포츠카는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매끈한 보디라인과 4개의 LED DRL이 들어간 헤드램프, 여기에 클리어 타입의 리어램프를 더해 특별한 차라는 첫 인상을 만든다. 스포츠카답게 에어로 다이나믹에 신경 쓴 모습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앞 범퍼 하단에 작은 스퍼일러를 포함해 후면에는 속도에 따라 오르고 내리는 리어 스포일러도 마련했다. 검정색으로 칠한 20인치 휠은 빨간색 브레이크 캘리퍼와 조합해 시선을 잡아 끈다. 이 외에도 GTS 전용 디자인인 검정색 로고와 블랙 틴팅 된 클리어타입의 리어램프, 검정색 테일 파이프가 적용됐다. 모두 '날 잡아보려면 잡아 봐'하는 식으로 강인함을 상징하는 요소다.

박스터는 도로에 서 있을 때도 매끈한 자태를 뽐낸다. 디자인의 완성은 탑을 열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조금씩 아쉬웠던 부분이 탑을 열면 완벽하게 딱 맞아 떨어진다. 최상위 GTS 모델답게 실내 곳곳에 알칸타라 소재를 사용했다. 고급감과 착좌감을 모두 챙겼다. 더불어 사용된 카본 인테리어는 고성능 차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포인트 중 하나다. 실내 구성은 포르쉐 최신 디자인과 조금 거리가 있다. 애플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 같은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 신형 인포테인먼트가 적용된 포르쉐의 차량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다수 개선했다. 진화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원한다면 다음 버전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엄청 불편한 부분도 발견된다. 주차 상태에서 P 위치에 기어봉을 넣어두면 공조기를 조작하기 매우 거북하다. 기어봉이 공조기 버튼 위치를 딱 가로막아 버린다. 포르쉐 답지 않는 패키지다.

박스터 GTS의 파워트레인은 2.5L 터보 수평대항 박서 엔진이다. 최고출력 365마력, 최대토크 43.8kg.m을 낸다. 7단 PDK 변속기는 극한 상황에서도 빠른 반응으로 운전자에게 신뢰를 준다. 문제는 스포츠카 다운 배기음이다. 스포츠카에 기대하는 고음에서 팡팡 터지는 시원한 배기음은 찾아 볼 수 없다. 마치 고음을 담당하는 트위터가 망가진 스피커를 듣는 기분이라고 할까. 박스터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다고 가속력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속페달을 지긋이 밟으면 순식간에 계기반 앞자리수가 바뀐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데 단 4.1초면 충분하다. 이 정도의 가속력도 부족했는지 드라이브 모드 다이얼 중앙에는 20초 동안 차량의 최대 성능을 끌어낼 수 있는 부스트 버튼을 마련했다. 숨을 죄여오는 가속력에 한동안 정신이 멍해진다. 918 스파이더에서 본 딴 스티어링 휠은 디자인부터 그립감, 구성까지 나무랄 곳이 없다.

718 박스터 GTS는 기존 6기통에서 2기통을 덜어내 감성적인 부분에선 손해지만 엔진이 작아지고 무게가 가벼워져 스포츠함은 배가됐다. 앞 45, 뒤 55의 이상적인 무게 배분과 단단한 차체를 바탕으로 코너링에서 경쾌함을 더한다. 미숙한 운전 실력 때문에 쉴 새 없이 차가 미끄러지는 상황에서도 토크벡터링과 차동제한장치 덕분에 순식간에 자세를 고쳐 잡는다.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는 노면은 단단하게 붙들어 준다. 불필요한 진동은 거르고 운전자에게 필요한 노면 정보를 전달한다. 급한 브레이킹 상황에서도 별다른 지친 기색없이 차체를 잡아낸다. 좀 더 하드한 주행을 원하는 운전자라면 박스터의 오픈에어링을 포기하더라도 쿠페 카이맨을 선택 하는 게 만족도가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박스터는 완벽한 2인승이다.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은 앞과 뒤에 마련된 각각 150L, 125L에 달하는 소형 박스 뿐이다. 실내에는 핸드백 조차 제대로 둘 곳이 없다. 그러나 이런 구성이 박스터의 매력일 수도 있다. 장거리 여행을 위한 2인용 짐 은 앞뒤에 자리잡은 트렁크에 적재가 가능하다. 시트 뒤에 우산 정도를 넣을 작은 공간도 마련됐다.

국산 1.6L 4기통 터보 엔진도 가뿐하게 200마력을 넘는다. 박스터의 최고출력 365마력이라는 게 대단한 수치는 아니다. 그러나 가벼운 무게와 이상적인 무게배분을 가진 박스터라면 운전이 조금 미숙하더라도 즐길 수 있는 적절한 출력이다.

진정한 운전의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박스터 GTS는 좋은 선택지다.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심할 때 루프를 연다면 폐 질환에 걸리는 지름길이지만 기분 전환에는 이보다 더한 것은 찾기 어렵다. 다만 이 모든 것은 1억2640만원이라는 지갑을 열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 이상적인 무게 배분과 경량 바디의 경쾌한 핸들링

: 고음이 사라진 벙벙거리는 배기음, 불편한 공조버튼과 기어봉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