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문국현이 누구냐?"

by좌동욱 기자
2007.11.12 10:35:03

여성적 리더십의 소유자
아직은 정치인 보다는 '기업인'에 가까워
"기업·국가 개혁하겠다"면서 '보수주의자' 자처

[이데일리 좌동욱기자] 정치 현장에서 문국현(사진) 후보를 만나 본 사람들은 '생뚱맞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기업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앞장서 대기업의 부패 청산을 외친다. 경제 전문가들은 6% 경제성장도 어렵다는 데 8% 성장을 약속한다. 남들이 '위기'라며 사람을 해고할 때 오히려 직원 수를 늘려 위기를 극복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목소리는 '나긋나긋'하다. 열정과 확신에 찬 정동영 후보의 연설을 듣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 '김이 새는 것'도 사실. 
 
김용택 시인은 "몸에 오래 밴 설거지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그에 대한 단상을 전한다. 지인들과 함께 놀러가 술자리가 파했을 때 문 후보가 손수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는 설명이다.
 
문 후보측 한 관계자는 "문국현의 리더십은 여성적"이라고 평가한다.   



"도대체 문국현이 누구냐"
 
문 후보가 출마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속시원한 대답을 내놓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직 '문국현'이라는 캐릭터가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탓이 크다. 하지만 문 후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정체성을 헷갈리게 하는 측면들도 적지 않다.  

그는 아직까지는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기업인'에 가깝다.
 
'경제성장률 8%' 공약에 대한 기자간담회가 열렸을 때 문 후보는 자본·노동의 성장 기여도와 총요소 생산성 개념을 각종 그래프를 동원해 설명했다. 

"이해하기 어렵다" "쉽게 설명하라"는 기자들의 항의가 나왔다. 그는 "아주 간단한 경제학 원리"라며 "시뮬레이션 모형으로 산출한 결과"라고 응수했다. 그 다음 기자회견 땐 아예 정책과 관련한 질문이 사라졌다.  

그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도 '일자리 나누기' 정책을 생산성 개념으로 설명했다. 소위 '치과 모델'이다. 치과를 경영할 때 야간조와 주말조를 더 뽑으면 자본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임대료와 설비투자 비용은 그대로인데 인건비만 추가 투입하게 되므로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 모델은 서울 서초동 'UIC시카고 치과병원'에 도입돼 성공을 거뒀다.

 
이런 비전과 철학의 밑바탕에는 유한킴벌리 CEO와 킴벌리클라크 북아시아 총괄사장을 지낸 경험이 자리잡고 있다.

외환위기 시절 문 후보가 도입한 '4조2교대' 근무체계는 정작 외환위기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하다 위기를 극복한 2000년 이후 조명을 받았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와 문 후보가 공저한 '대한민국 희망보고서 유한킴벌리'는 기업 인사책임자들의 필독서가 됐다.

문 후보의 경영 철학은 '돈'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독특한 인간 중심 철학에서 비롯하고 있다. 

4조 2교대는 공장 근무자를 4개조로 나눠 12시간씩 주간근무 4일 → 휴식 4일 → 12시간씩 야간근무 4일 → 휴식 4일'로 순환 근무를 하는 근무 체계. 이렇게 근무하게 되면 직원들은 연간 180일을 일하고 185일을 쉰다. 기업에 필요한 직원 수가 늘어나게 돼 고용 창출 효과가 있다.

잭 웰치 전 GE 회장조차 문 후보를 "아시아에서 가장 통찰력 있는 CEO"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잭 웰치는 현대 기업경영에 인력 감축, 구조조정 이론을 확산시킨 장본인. 문 후보의 경영 철학과는 180도 다르다.  





문 후보가 가장 높이 평가받는 부분은 깨끗한 도덕성이다. 
 
지난 10월 자체 '검증 청문회'에서 발표한 재산 내역에 따르면 문 후보는 지난 5년간 연 평균 10억원을 벌어 이 중 3억원은 세금으로, 3억원은 사회 기부금으로 납부했다. 총 재산은 137억여원.

집 한채가 없어 고민하는 서민들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에 대해 문 후보는 "나는 아시아 최고 연봉자였다"며 "오히려 재산이 그것 밖에 안되는가를 물어야 정상"이라고 항변한다.

95년 CEO로 취임하고 나서는 술이나 골프 접대를 위한 판공비를 없앴다. 이런 관행들은 아직도 국내 유통 업계에 버젓이 살아있는 관행이다.

문 후보는 "이 때문에 주요 유통업체들로부터 제품이 퇴출당하면서 주요 품목 20%의 영업루트가 막혔다"고 회상했다. 또 "이 때문에 회사에서 몇번이나 잘릴 번 했다"고도 한다.

이런 개혁 성향에도 불구하고 문 후보는 자신을 "보수 성향"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생활방식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보수주의"라고 평가했다. 술 담배 골프도 하지 않는다. 보수주의자가 어떻게 기업을 혁신하고 또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나서는 걸까.

그는 논어 학이편의 '本立而道生'을 인용한다. "근본을 세우면 방법은 자연히 생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문 후보의 이런 철학과 공약이 실제 국가 경영에 통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 그는 이명박 정동영 후보와 달리 행정 경험이 전혀 없다.

문 후보가 '공상적 사회주의자'인 18세기 말 로버트 오언을 닮았다는 지적도 있다. 오언의 사회주의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복지 혜택을 늘려 생산성을 높이자는 운동.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영국에서는 파격적인 주장이었지만 당시에는 실패했다.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국민들에게 어떤 식으로 이해시킬 지도 무거운 과제다. 그가 현재 상황에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 후보는 내년 총선에서 "의석 절반을 가져오겠다"고 장담하지만, '인물' 중심의 대선과 '정당' 중심의 총선은 분명히 다르다. 
 
현재 그의 선거 캠프에 가담한 현직 의원은 김영춘 의원 한명. 그나마 김 의원도 소속 정당을 탈당하면서 "내년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최근 지지율이 답보하면서 문 후보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출마 후 3개월만에 10% 내외까지 치솟았던 지지율은 최근 5%대로 주저앉았다. 이회창 후보의 출마 '불똥'이 튄 결과. 
 
문 후보는 "법정 선거가 시작되는 11월25일 이후에는 공평한 기회가 온다"며 "민심은 기존 정당이 국민을 실망시킨 것에 분노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심은 내 편"이라는 발언이 기존 정치인과 얼마나 다를 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