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유럽의 라스베이거스’ 되나

by조선일보 기자
2007.02.08 09:29:59

맨체스터 등 17개市, 카지노단지 선정 “도시 재건” “도박에 중독” 여론 양분

[조선일보 제공] 영국이 도박의 나라가 되고 있다.

영국 카지노자문위원회(CAP)는 지난달 31일 맨체스터를 수퍼 카지노 도시로 결정하고, 대형 카지노와 소형 카지노를 세울 수 있는 도시로 각각 8개씩 모두 17곳을 선정했다. 수퍼카지노는 무제한 잭팟이 터지는 도박기계 1250개까지, 대형카지노는 최대 4000파운드(약 760만원) 잭팟이 터지는 도박기계 150대까지, 소형카지노는 80대까지 들어설 수 있다.

앞으로 17개 도시에서 3000대가 넘는 도박기계가 깔리면 영국의 도박시장은 급속히 팽창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영국에는 소형카지노 130여개와 베팅(betting) 숍 8500여개가 문을 열고 클럽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영국인이 도박으로 쓴 돈은 2005년 530억파운드(약 100조원)였다. 매일 도박장을 찾는 중독자만 37만명으로 추산된다. 영국의 대표적 도박 사업자인 래드브록스와 윌리엄힐의 매출은 2002~2005년 각각 110%, 219% 증가했다. 지난해 독일월드컵에서 영국 도박기업들이 축구 승패를 놓고 벌어들인 돈이 10억 파운드(약 1조9000억원)에 달할 정도다. 24시간 익명으로 도박을 즐길 수 있는 인터넷 도박사이트도 2000여개 개설돼 호황을 누리고 있다.



도박산업을 라스베이거스와 마카오에 버금갈 정도로 키우기 위해 앞장서고 있는 게 영국 정부다. 토니 블레어(Blair) 총리는 2005년 도박규제를 완화한 새 도박법을 도입한 이후 경제적으로 낙후된 도시의 일자리 창출과 외자 유치를 내세워 지난해부터 대규모 카지노 설치를 추진해 왔다. 모로코와 프랑스에 소규모 카지노가 발달해 있고 포르투갈에 대형 카지노가 설치돼 있지만 영국처럼 정부차원에서 카지노 도시를 키우는 나라는 유럽에선 드물다.

도박 반대여론도 만만치는 않다. 로완 윌리엄스(Williams) 캔터베리 대주교는 “도박은 중독으로 이어지고 정신세계는 도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도시를 재개발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 텐데 안타깝다”고 했다. 도박산업 확장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각 도시는 도박산업을 유치하지 못해 불만이다. 지난해 8월 수퍼카지노 부지 평가에서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했던 런던 인근의 그리니치와 해변 휴양지 블랙풀은 이번에 탈락하자 충격에 휩싸여 있다. 부지 평가에서 8개 후보도시 중 꼴찌를 차지했던 맨체스터가 선정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니치의 밀레니엄 돔에 3억5000만 파운드(약 6600억원)를 쏟아 붓고 있는 미국의 억만장자 필립 안슈츠(Anschutz)는 항전(抗戰) 태세다. 안슈츠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AEG의 유럽 최고경영자 데이비드 캠벨(Campbell)은 “카지노자문위 결정에 대한 법적 대응 여부를 검토 중”이라며 “수퍼카지노 없는 밀레니엄 돔에 더 이상 투자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안슈츠는 적자가 누적돼 2000년 말 문을 닫은 밀레니엄 돔을 영국 정부에서 사들여 2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포츠 경기장과 영화관, 호텔 등 복합레저시설 건설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존 프레스콧(Prescott) 영국 부총리가 재작년 7월 안슈츠 목장에서 로비성 환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리니치엔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프레스콧 사건 이후 희망에 부풀었던 블랙풀은 탈락의 아픔이 더욱 크다. 도시재건회사인 리블랙풀의 도우 개럿(Garrett) 사장은 “정부는 이미 살아난 도시(맨체스터)를 돌보느라 활력이 필요한 도시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상한 결정으로 납득하기 힘들다”고 했다. 블랙풀은 지난 20년간 관광객이 1800만명에서 1000만명으로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