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결정적장면]'웰컴 투 비디오' 그놈…美 보내려는 자와 막는 자

by남궁민관 기자
2020.05.23 12:25:00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 美 인도 놓고 시끌
막는 자 "범죄수익은닉 무죄…韓 처벌법도 있다"
"불쌍하다"…부친, 이중처벌 금지 염두 고소장도
보내려는 자 "범죄소명 자신…자국민 해외 처벌 충분"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텔레그램 성 착취물 공유방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최근, 이미 만기 출소한 ‘그놈’이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그놈은 다름 아닌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W2V)’ 운영자 손정우씨다.

손씨는 아동 성 착취물 유포 등 혐의로 ‘고작’ 징역 1년 6월을 선고·복역한 뒤 지난달 27일 만기 출소했다. 다만 조주빈 사건 등으로 아동 성 착취물 제작·유포에 관해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면서 짧은 형을 선고받은 손씨에 대해 불편한 지적들이 이어져 왔다.

결과적으로 법무부는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받아 들이기로 결정했다. 이미 한국에서 기소돼 처벌을 받은 혐의들을 제외한 범죄수익은닉 혐의로 미국에 손씨를 보내 추가적인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

지난 19일 서울고법 형사20부(재판장 강영수) 심리로 열린 손씨의 범죄인 인도심사 청구 사건 첫 심문, 보내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법정 공방이 이번 주 결정적 장면이다.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세계 최대의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 씨의 범죄인 인도심사 심문이 열린 가운데 중계 법정 안에서 취재진이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국민을 미국에서 처벌?…“속인주의 포기하려는가”

손씨 측은 이날 재판에서 손씨가 ‘대한민국 국민’임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하고 나섰다.

손씨 측은 “손씨는 국내에 서버를 두고 본인 집에서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범죄 역시 대한민국 영역에서 벌어진 범죄”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이와 관련 대한민국에 처벌 법률이 있는데 외국에서 처벌하는 것은 속인주의, 속지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이는 사법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각국의 문화가 다르고 그에 따라 같은 죄라도 형량이 다른데, 우리나라보다 강력한 처벌을 하는 미국에 손씨를 보내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현재 범죄인 인도 요청 대상이 된 혐의인 범죄수익은닉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5년 이하의 징역, 미국은 이보다 4배 강력한 20년 이하의 징역으로 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범죄수익은닉과 관련 국내에서 기소되지 않은 점을 들어 무죄 취지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범죄인인도법 제7조에 따르면 ‘범죄인이 인도범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는 경우’ 절대적 인도거절 사유가 된다는 주장이다.

손씨는 웰컴 투 비디오 사이트에서 음란물을 판매하고 받은 비트코인을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해 부친의 은행계좌에 송금했으며, 일부는 환전 도박사이트에 이체하기도 했는데, 검찰은 이를 두고 범죄수익을 은닉하기 위한 것으로 봤다.

이에 대해 손씨 측은 “손씨가 아버지 계좌를 이용한 것은 당시 손씨 명의 휴대전화가 없어 여러 인증절차 때문에 아버지의 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도박사이트에 보낸 자금은 자금을 세탁하기 위한 게 아니라 코일을 주고 파는 도박에 관여한 것으로, 투자목적으로 다른 코인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대가 어느 시댄데’…檢 “결과발생지 따라 송환 가능”

검찰은 곧장 “자국민이라고 해서 인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오늘날 비트코인, 랜섬웨어 등 범죄행위지와 결과발생지가 다른 나라에 해당하는 새로운 특성의 범죄들이 등장하고 있다”며 “서버는 다른 나라에 있지만, 실제적인 범죄 관련 행위가 다른 나라에서 이뤄지고 그게 수익이 되면 그 나라에서 범죄를 한 것과 마찬가지 효과”라고 지적했다.

미국 교도소 수감 시 발생할 수 있는 인도적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서울고법에서 미국에 범죄인을 인도한 사례가 다수 있으며, 당시 미국이 형사사법제도에 비춰 범죄인에게 부당하거나 비인도적인 대우를 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해 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범죄수익은닉과 관련해서도 “이 사건은 비트코인 등 거래를 했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상당기간 수사를 했으며, 해당 수사자료와 증거물을 보면 범죄사실은 충분히 소명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의 아버지가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범죄인 인도심사 청구사건 심문기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美 인도 막으려는 또 한명…손씨 아버지 “죄 위중하나 불쌍해”

이날 심문은 피고인 출석의무가 없어 당초 예상과 달리 손씨는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다만 이날 법정에서는 손씨의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내 취재진의 이목을 끌었다.

앞서 손씨 아버지는 지난 11일 손씨를 서울중앙지검에 법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범죄수익은닉에 대해 국내에서 처벌을 받게 되면 이중 처벌 금지 원칙에 따라 미국 송환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재판에서는 손씨 아버지의 고소 건 역시 언급됐다.

재판부는 검찰에 해당 고소와 관련 진행 경과를 물었고, 검찰은 “검토 중에 있으나, 수사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기소되지 않은 이상 인도청구의 절대적·임의적 거절사유에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손씨 아버지의 고소가 송환을 막기 위한 의도가 뚜렷해 보인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검찰이 자체적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각하 처분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히려 향후 손씨가 범죄수익은닉죄를 자백한 것으로 간주돼 범죄인 인도 결정에 힘을 보태는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손씨 아버지는 취재진들의 질문을 거듭 회피하다가 “물론 죄는 위중하지만, 아비로서 미국으로 보낸다는 것이 불쌍한 마음이 든다”고 말한 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재판부는 다음 달 16일 손씨를 불러 마지막 의견을 듣고, 최종 인도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에는 범죄수익은닉죄는 왜 기소되지 않았는지, 손씨 아버지의 고소 건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사실관계 및 의견을 파악해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