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용의 軍界一學]대북 특사 국면에서의 '주적' 논쟁

by김관용 기자
2018.03.04 12:53:09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남북관계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불과 지난 해 말까지만 해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군사적 긴장감이 계속됐던 것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격세지감’(隔世之感)입니다. 북한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의 특사 파견으로, 우리 정부도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의중을 파악하고 북미대화에 응하도록 설득한다는 구상입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남한을 방문하고 평양에 귀환한 김여정 당 제1부부장 등 고위급대표단과 만나 이들의 활동 내용을 보고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9대 대선과정에서 후보자들 사이에 이른바 ‘주적’(主敵) 관련 논란이 일었습니다. 당시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게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당시 문 후보는 “유 후보도 대통령이 되면 남북 간 문제를 풀어가야 될 입장이다. 필요할 때는 남북정상회담도 필요하다. 국방부가 할 일이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고 답했습니다. 이후 보수진영에서는 그의 안보관을 문제삼으며 ‘국군통수권자가 주적이라고 말도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지난 달 28일 국회 긴급 현안 대정부질문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주적 관련 설전을 벌였습니다. ‘천안함 배후’로 지목된 북한 김영철의 방남에 항의하기 위한 것으로 의원들은 송 장관에게 “주적이 누구냐”고 반복적으로 물었습니다. 이에 송 장관은 “주적이란 개념은 별도로 없고 적이란 개념은 있다”면서 “주적·종적 논란이 많기 때문에 제가 여기서 단언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국방부는 주적이란 용어를 이미 폐기해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2016 국방백서를 보면, 국방목표에는 주적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대신 ‘북한정권과 북한 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도 ‘북한의 상시적인 군사적 위협과…(중략)…우리의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 이같은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주체인’이란 단서를 달았습니다. 북한정권과 북한군이 군사적 도발과 위협을 포기하고 평화적인 대화에 나선다면 우리의 적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국방백서에 주적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이양호 전 국방장관 시절 발간한 1995년 국방백서부터입니다. 당시 남북 특사교환을 위해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열린 제8차 실무접촉에서 북측 박영수(2003년 사망)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에 따른 것입니다. 이에 국방백서에서는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하면서…”라는 문구를 넣어 주적이란 용어를 썼습니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 국방백서도 외교적으로 부적절한 ‘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일각에서는 “북한이 주적이면, 한반도 유사시 중국이 조중조약에 따라 전쟁에 나서면 ‘사이드 적’이냐”는 비판도 나왔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 당시 발행한 ‘2004 국방백서’에서 ‘주적’은 ‘직접적 군사위협’이라는 말로 대체됐습니다. 이후 2006년에 발간된 국방백서에선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 이명박 정부때 발간된 2008년 국방백서는 ‘북한의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으로 각각 표현됐습니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하면서 대북 강경론이 비등하며 주적 개념 명문화 여부가 논의됐습니다. 그러나 정치 사회적 논란을 우려해 이후 발간된 ‘2010 국방백서’에서도 ‘주적’이 아닌 ‘적’이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당시 국방백서는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표현했으며 이 문구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주적은 말 그대로 우리가 싸워야 하는 ‘주된 적’을 뜻하는 것이지만, 오랜 논쟁을 거친 정치적 용어가 됐습니다.

주적은 철저히 군사적 용어입니다. 군의 본질은 우선 적을 식별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의 적인지를 가려내고 그 위협 순위에 따라서 적의 순위를 결정합니다.이에 가장 순위가 높은 적에 대해서 부터 대비 계획을 만듭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의 주적이 누구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재원과 역량을 우선 투입해야 하고 또한 가장 많이 투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에 대한 대비가 충분치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북한이 가장 위협우선 순위가 높은 ‘주적’이고 그래서 이에 대한 작전계획에 거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적의 개념이고 주적이 군사적으로는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정치적으로 이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해병대 장병들이 동계 설한지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해병대]
북한과 평화 증진을 모색하고 상생 협력을 추구한다고 해서 우리 군까지 긴장을 풀고 있는 건 아닙니다. 유사시를 대비해 우리 군은 마땅히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주적은 북한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한다면, 북한이 남한의 의도를 의심하고 대화도 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공개적으로 얘기하고 대비하는 것이 상식적이라는 의미입니다. 국군통수권자와 국방수장이 북한을 주적이라고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아직 남북은 전쟁이 종결되지 않은 휴전 상태입니다. 전쟁 중에도 대화와 협상은 하는 법입니다. 이번 대북 특사 파견이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북한을 국제사회와의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는데 의미있는 역할을 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