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공교육의 ''대입 돌풍''

by조선일보 기자
2006.02.10 09:36:21

신입생 성적 낮은 경일여고, 전국 여고중 서울大합격 공동1위

[조선일보 제공]


대구에서는 수성구가 서울의 강남8학군에 해당한다. 그런데 정작 남구 봉덕동에 있는 한 여고(女高)가 수년째 전국 최고에 가까운 성적을 내고 있다. 경일여고다. 경일여고는 올해 서울대 입시에서 13명을 합격시켰다. 서울 은광여고와 함께 여고 랭킹 1위다.

대구시민들은 이 지역을 “솔직히 중심지가 아닌데…”라고 말한다. 아파트보다 다가구주택이 많고 학부모들도 맞벌이가 많다. 주변에는 미군부대도 있다. 그래서인지 경일여고 신입생 가운데 중학교 성적 상위권 학생 비율은 수성구 고교의 30%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슨 비결이 있는 걸까?

첫째 진학 포커스를 수시 특기자 전형에 맞추는 것이다. 박주민(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합격)양의 경우 수시전형 봉사부문에 지원해 합격했다. “고교 3년간 노인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한 것이 결과적으로 입시에서 좋은 결실을 얻는 비결이 됐다”고 말했다.

경일여고는 이것을 ‘맞춤형 진학지도’라고 표현한다. 문학에 소질있는 학생은 ‘문학 특기자 전형’, 수학 우등생은 ‘수학 특기자 전형’, 과학에 재질이 있으면 ‘과학 특기자 전형’을 준비시킨다. 3학년이 되면 학생들은 면담을 통해 ‘입학 루트’를 결정한다.

이 과정은 교사가 학생들의 특징을 파악하고 장래의 꿈을 실현시켜 주는 과정이다. 3학년 김종계(金鍾桂) 교사는 “아이들이 미래에 어떤 일에 종사하고 싶어하는지, 요즘 고민은 무엇인지 수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과학계열에 합격한 마주연(19)양의 경우 ‘글쓰기’가 대입에 도움이 됐다. 2학년 때 ‘환경글짓기 대회’ 건교부 장관상, 3학년 때 대산 청소년문학상 금상을 수상한 마양은 서울대 수시전형 ‘문학 특기자 전형’에 지원해 합격했다.



이 결과 경일여고 서울대 합격자 13명 중에는 수시합격이 10명이나 된다. 대구지역 전체 서울대 수시합격자가 72명인 것을 감안할 때 놀라운 수치다.


▲ 대구 변두리에 있는 경일여고가 이번 입시에서 서울대에 13명을 합격시켰다. 전국 여고 중 최고 성적. 그 중 11명이 9일 오전 교정(校庭)에 모였다.이재우기자 jw-lee@chosun.com
둘째 경일여고에서는 ‘선배들의 성공사례’가 족보(族譜)로 이어진다.

이 학교 진학지도실에는 ‘입시파일’이 있다. 대학에 입학한 선배들이 면접·논술·수능을 준비하면서 느낀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적어놓은 글을 모은 것이다. 2005학년도 서울대 사회계열에 합격한 선배가 있다면 그는 후배를 위해 ‘면접시험 때 교수는 몇 명이었고, 어떤 질문이 나왔고, 대답을 어떻게 했다…’고 상세히 기록해 놓는다. 사회과학계열 합격자 김민지(19)양은 “선배 글을 2편 보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셋째 일선 학교에서 다루기 힘든 논술과 면접도 집중 지도했다. 학교측은 논술을 1학년 국어시간 논술강의와 토요일 오후 논술특강 등으로 구분해 지도했다. 면접시험이 임박하면 ‘심층 면접반’이 개설된다. ‘심층 면접반’ 학생들은 교사 10명 앞에서 실제와 똑같은 상황에서 질문을 받는다. 이명수(李明秀) 교장은 “학생들은 이런 훈련을 통해 시험장에서 당황하지 않고 대답하는 ‘담력’을 키운다”고 말했다.

이런 프로그램이 가능한 것은 교사들의 희생 때문이기도 하다. 학교측은 “교사들은 정규교과가 아닌데도 논술·면접 수업에 기꺼이 참여한다”고 말했다.

수준별 이동수업과 수업방법 공개도 큰 역할을 했다. 경일여고는 1학년 때부터 국어·영어·수학 수준별 이동수업을 실시하고 성적 우수학생들을 방과 후 따로 모아 보충수업을 실시한다. 교사들은 자신의 수업방법을 공개하고 수업발표대회를 통해 ‘수업의 품질’을 향상시킨다. 이명수 교장은 “교사들이 열심히 하면 당연히 교육의 질(質)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입학 직후 대구지역 전체 학력평가에서 중위권인 학생들의 성적은 3학년 때쯤 상위권으로 뛰어오른다.

입시 전문가들은 “소위 서울 강남의 입시명문 학교들이 사교육에 의지해 학생들의 진학률을 높이고 있는 것에 비해 경일여고 사례는 공교육이 중심에 서서 학생들을 교육시킨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