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지성’…26일 별세 이어령 장관은 누구?

by장병호 기자
2022.02.26 14:32:16

향년 89세
학자·언론인·행정가로 활동한 '문화 아이콘'
88 서울올림픽 개막식 '굴렁쇠소년' 기획
60년간 130여권 책 펴내…암 투병에도 집필 이어가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문화부 초대 장관(1990~1991)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암 투병 끝에 26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사진=이데일리DB)
고인은 60년 넘게 학자, 언론인, 소설가, 행정가, 비평가 등 활동하며 ‘우리 시대의 지성’ ‘문학계의 거목’ 등으로 불려왔다.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호적성 1934년생)했다. 부여고를 나와 서울대와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서울신문을 시작으로 1972년까지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면서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1966년부터 이화여대 강단에 선 이후 1989년까지 문리대학 교수를, 1995년부터 2001년까지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를 지냈다. 2011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됐다.

20대 초반 기존 문학계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연이어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55년 서울대 문리대학보를 통해 발표한 ‘이상론’으로 당시까지만 해도 ‘미친 작가’로만 여겨졌던 시인 이상을 재조명했으며, 1956년엔 소설가 김동리·이무영, 시인 조향 등에 대한 비판과 함께 문단 원로들의 권위 의식을 질타한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고인은 문학 비평을 넘어 문화 기획 및 창작과 교육 분야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을 총지휘해 중요한 성과를 남겼다. 당시 최고의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굴렁쇠소년’을 기획한 이가 바로 고인이었다.



노태우 정부 때 문화공보부를 공보처와 문화부로 분리하면서 1990년 출범한 문화부의 초대 장관에 임명됐다. 문화부 장관 재임 시절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세계적인 예술인을 길러내는 집합소로 자리잡은 한국예술종합학교(1992년 개교)를 만든 것이다.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 설립,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는 경복궁 복원 계획 등도 고인이 문화부 초대 장관으로 이뤄졌다.

저술 활동도 쉬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1984년 발표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고인의 대표작 중 하나다. 고인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통해 하이쿠, 분재, 트랜지스터, 쥘부채 등 일본 문화가 가진 독창적인 특징이 바로 ‘축소지향’이라는 주장을 펼쳐 화제가 됐다. 2006년엔 ‘디지로그’를 통해 후기 정보화 사회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 상생하는 ‘디지로그’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밖에도 고인은 ‘이것이 한국이다’(1986), ‘세계 지성과의 대화’(1987),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1997),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 ‘생명이 자본이다’(2013) 등 60여년 동안 약 130여 종의 저서를 펴냈다.

고인은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항암치료를 받는 대신 마지막 저작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 등 저서 집필에 몰두해왔다. 지난해 10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또한, 지난해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조시(弔詩) ‘영전에 바치는 질경이 꽃 하나의 의미’로 추모하고 국가장의 유족 측 장례위원에도 이름을 올렸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예종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 교수가 있다. 고인의 장녀 이민아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지역 검사를 지냈다가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유족 측은 5일간 가족장으로 치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