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톺아보기]빈병 취급수수료 인상, 맥주가격도 올리나

by박수익 기자
2016.06.04 10:00:01

주류제조사-도소매업체 취급수수료 인상키로
취급수수료는 빈병 수거비용=제조사엔 매출원가
빈병 사용률 상승에 따른 편익도 모두 환원키로
결과적으로 주류 제조사는 비용 부담 늘어
''눈치게임'' 중인 맥주가격 인상 논리될 수도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우리가 마시는 소주나 맥주병의 10개 중 9개 적어도 8개는 새로 만든 병이 아닙니다. 10개 중 한두 개만 새로 만든 병이고 대부분은 빈병을 수거해 살균·세척한 후 재사용하는 병입니다.

지난 2일 주류 제조사와 도소매업계가 1년 5개월간 마라톤협상 끝에 재사용하는 빈병에 대한 취급수수료를 인상키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요. 이와 관련해 주식시장이나 소비자입장에서 어떤 영향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소주·맥주를 만드는 주류 제조사 중 상장회사는 참이슬후레시와 하이트 맥주 만드는 하이트진로(000080), 처음처럼과 클라우드를 만드는 롯데칠성(005300)음료가 대표적입니다. 맥주 점유율 1위 카스맥주를 만드는 오비맥주는 비상장사입니다. 이런 회사들이 만드는 술은 개인 소비자나 식당에 바로 파는 것이 아니고 중간에 도매상들을 거치게 됩니다.

도매상들은 술을 유통하는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빈병을 모으는 역할도 합니다. 이때 빈병을 모아오는 대가로 주류회사가 도매상에게 주는 돈이 바로 빈병 취급수수료입니다. 도매상들이 빈병을 거둬들이는데 들어가는 운반비나 인건비·보관비 등을 주류 제조사가 보전해주는 개념입니다.

지난 2일 발표내용을 보면 오는 15일부터 소주병 취급수수료가 16원에서 28원(75% 상승)으로, 맥주가 19원에서 31원(63% 상승)으로 각각 오릅니다. 그리고 내후년인 2018년부터는 2원씩 더 오르게 됩니다.

취급수수료는 기본적으로 소주·맥주를 만드는 회사가 도매상들에게 주는 비용입니다. 당장 우리 같은 일반소비자와 관계는 없는 돈입니다. 그렇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소주·맥주가격이 올라갈 수 있는 요인입니다.

빈병 취급수수료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에 적혀있는 개념인데요. 이 법의 이름에 취급수수료 인상 목적 대부분이 담겨 있습니다. 재활용(정확히는 재사용)비율을 높여서 환경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취급수수료는 빈병을 최종적으로 모아서 주류회사에게 가져다주는 도매업체들이 받는 돈인데, 이 돈을 올려주면 빈병 회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겠냐는 논리입니다.

취급수수료와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으로 ‘공병(빈병) 보증금’도 있는데요. 이건 소주병 뒤쪽에 붙어 있는 종이에 보면 ‘보증금 40원(맥주는 50원)’이라고 적혀 있는 금액을 말합니다. 우리가 구매하는 소주·맥주가격에는 빈병을 가져다 주면 돌려받을 수 있는 보증금이 포함돼 있습니다. 공병 보증금은 내년 1월 1일부터 소주병은 40원에서 100원, 맥주병은 50원에서 130원으로 오릅니다.

취급수수료와 공병보증금을 모두 올리는 건 빈병 재사용률을 높이려는 공통된 목적이 있습니다. 다른 점은 취급수수료는 주류회사와 도매·소매상 등 유통업자들과의 약속, 공병보증금은 소비자와의 약속입니다.

주류업체 입장에서 중간유통업자들에게 빈병 취급수수료를 올려주는 건 매출원가를 더 발생시키는 ‘비용’입니다. 그러나 비용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빈병 취급수수료를 올려줘서 결과적으로 전체 사용할병 중에서 빈병 재사용률이 높아지면 더 많은 마진을 남길 수 있습니다. 새로 만든 병과 재사용병의 단가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주류회사가 새로운 병을 주문할 때 병당 단가는 소주병이 개당 150원에서 170원 수준, 맥주병은 190원에서 200원 정도입니다. 반면 재사용하는 병은 새로 만든 것이 아니니까 이 비용은 없는 것이고, 병을 모아서 가져오는 도매상들에게 지급하는 취급수수료만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취급수수료는 소주 16원, 맥주는 19원이었는데요. 이 숫자들만 단순계산으로 보면 재사용병은 새로만든 병의 10분의 1 수준 단가인 셈이죠. 그만큼 취급수수료를 올려주는 대신 빈병 재사용률이 높아지면 이론적으로 소주·맥주를 만드는 제조업체들도 반드시 손해는 아니고 비용을 제하고 남을 만큼 이익을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번 취급수수료 인상안 합의내용을 따져보면 주류업체들의 손익계산서에 좋지는 않습니다.

이번에 주류업체와 도매상들이 합의한 것은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취급수수료를 높여주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취급수수료 인상과 함께 앞으로 빈병 재사용률이 늘어서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추가 편익(새로운 병 대신 빈병을 더 사용해서 발생하는 제조단가 절감액)은 주류 제조회사가 가져가지 않고 도·소매업계에 환원한다는 내용입니다.

결과적으로 주류제조회사는 취급수수료 인상이라는 뚜렷한 비용이 발생하는데 비해 빈병 재사용률이 늘면서 발생할 이익은 환원해야 하니까 계산기를 두들겨보면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있습니다.

당장은 오는 15일부터 취급수수료가 인상되니까 2분기 실적에는 거의 영향이 없더라도 본격적으로 3분기 실적부터는 취급수수료 인상으로 매출원가가 상승하는 부분이 반영될 것입니다. 특히 상장회사 중에서는 롯데칠성음료는 전체 매출에서 음료가 65%, 주류가 35%인 반면 하이트진로는 주류가 매출의 96% 이상을 차지하는 온전한 주류업체입니다. 아무래도 매출원가 상승은 주류 비중이 높은 하이트진로가 좀 더 영향이 있다고 보입니다.

주류업체 입장에서 취급수수료 인상에 따른 비용상승 요인은 뚜렷한데 빈병 재사용률 증가에 따른 추가 편익은 환원해야한다면 결국 중장기적으로 마진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류 소비가 급격히 늘지 않는 이상 마진 압박을 해소할 답은 술값 자체를 올리는 방법이 유일할 텐데요.

얼마 전에 소주가격을 한번 올렸고, 당장 취급수수료 올려준다는 명목으로 다시 소주값을 올리면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다만 소주가격은 올렸는데 맥주가격은 최근에는 올리지 않은 상황이 빈틈입니다. 맥주가격을 올리는 것은 지금도 주류업계 내에서 사실 ‘눈치작전’ 중입니다. 맥주점유율 1위 카스를 만드는 오비맥주가 맥주가격 인상을 선언한다면,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 등 후발주자들도 따라서 올리게 될 것입니다.

이번 취급수수료 인상에 따른 비용 발생이 당장 소주가격을 올리는 논리로 사용하긴 어려워도 맥주가격을 올리는 논리로 사용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조업체와 도소매상 사이의 문제인 취급수수료가 당장 관련없는 이슈인 듯 하지만 결과적으로 술값, 특히 맥주 구매가격이 올라갈 수 있는 셈입니다.

환경부가 빈병 취급수수료 인상 합의 소식을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관련업계는 이번 합의가 2009년 이후 동결된 취급수수료를 그간의 재사용 편익과 물가 인상 등을 고려하여 현실화한 것으로 술값 인상 논의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관련업계라는 표현을 애둘러 썼지만 정부가 작성한 자료인 만큼 신빙성을 지켜봐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