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렉시트 위기] 그리스 국민투표로 엇갈린 치프라스와 메르켈의 운명

by장순원 기자
2015.07.06 09:04:55

치프라스 향후 행보 힘실릴 듯
메르켈, 유럽결속력 약화 오명

출처:구글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정치적 생명을 건 도박에서는 일단 성공했다. 5일(현지 시간) 그리스에서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반대표가 찬성을 압도해서다. 채권단과 협상을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반대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그의 설득이 먹힌 결과다.

그리스 국민은 2010년부터 5년간 계속된 긴축에 지쳐 있다. 채권단의 요구대로 긴축정책을 폈는데, 경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2009년 2640억달러였던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은 25% 이상 쪼그라들었다. 실업률은 25%가 넘고 청년 둘 중 한 명은 실업자 신세다. 반면 연금을 포함한 복지지원은 갈수록 줄어든 상태다. 채권단의 추가긴축요구에 대해 반발여론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얘기다.

치프라스 총리는 이 같은 여론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유럽 채권단과 채무탕감과 긴축강도를 누그러트리라는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는 지난 25일 채권단이 제시한 구제금융 협상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면서 승부수를 걸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가져올 경제적 후폭풍과 유럽의 압박 속에서 찬성여론이 반대보다 10% 포인트 높았던 시기였다.

이달 초만 해도 투표 결과는 찬성으로 기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반대여론이 확산했고 결과적으로 압도적 표차로 승리를 거두게 됐다. 그리스 내부에 응축된 반긴축 정서를 정확하게 읽어낸 치프라스의 승부수가 먹힌 것.

투표 승리 이후 치프라스의 행보에는 힘이 실릴 전망이다. 일단 국민적 지지를 끌어내는 데 성공하면서 내적인 동력을 확보해서다. 또 최악의 경우 유로존에서 탈퇴하더라도 정치적 부담감은 예전보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TV를 통해 “그리스는 역사적 걸음을 내디뎠다”며 협상의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반면 이번 투표의 가장 큰 패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될 전망이다. 그는 줄곧 국민투표 이후 협상을 재기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고수했다. 양보를 통해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한 반박이었다. 그리스 추가지원에 반대하는 독일 국민 정서와 야당을 고려한 것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과는 그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나왔다.

자칫하다가 그리스와 국제채권단의 협상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으로 빨려들며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한다면 유럽통합에 타격을 준 지도자란 오명을 뒤집어 쓸 판이다.

여전히 협상이 진행형이란 점에서 두 지도자에게는 험난한 앞날이 기다리고 있다. 둘 다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라는 점에서는 뜻을 같이 한다. 그리스나 유럽 입장에서 그렉시트의 충격파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 입장에서는 메르켈의 양보를 이끌어내야 하고, 독일로서는 원칙을 지키며 그리스를 유로존에 묶어둬야 하는 풀기 어려운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