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넘어 세계로]⑤흙 묻은 채 그대로 진열…매출 껑충

by윤도진 기자
2012.03.29 10:30:00

(르포)이마트 中 상하이 창장점을 가다
재래시장 분위기 연출 현지 소비자 맞춤 전략
부실점포 11곳 정리..수익나는 지점 역량 집중
까르푸 등 경쟁사 염탐..사업 철수설도 `잠잠`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3월 29일자 03면에 게재됐습니다.


[상하이=이데일리 윤도진 특파원]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국내기업으로 흔히 삼성과 현대차, LG 등을 꼽는다. 이들이 반도체와 자동차, 휴대폰을 앞세워 한국의 이름을 세계 곳곳에 알린 기업이라는데는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들 못지 않은 활약상을 보여주는 곳이 유통·식음료업체다. 길어야 20년, 짧게는 5년에 불과한 해외진출의 역사지만 여러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현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괄목할 성과를 내고 있다. 이데일리는 창간 12주년을 맞아 세계시장에 당당히 `글로벌 코리아`의 깃발을 꽂고 있는 유통·식음료업체들의 활약상을 소개한다. [편집자]
 
지난 24일 오후 3시 무렵 상하이(上海)에서 비교적 외곽지역 주택가에 자리잡은 `이마이더(易買得·이마트(139480)의 중국명)` 창장(長江)점. 평일 오후였지만 옷가게와 음식점들이 있는 1층 임대매장에는 쇼핑을 하는 현지인들이 생각보다 붐비고 있었다. 사람이 적을 것이라 생각한 것은 최근까지만 해도 이마트 중국 사업이 신통치 않다는 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상당한 손실을 본 이마트가 중국에서 철수할 거라는 추측이 한국에서는 물론 현지에서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 날 목격한 이마트의 모습은 뜻밖으로 활기찼다. 매장 3층 채소와 과일 코너에는 장을 보러 나온 주부들이 특가판매 상품을 사기위해 경쟁하듯 먹을 거리를 고르고 있었고 수십 개가 열려진 계산대에도 물건을 가득 담은 쇼핑카트가 줄지어 서 있었다. 판매대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는 한 직원을 잡아세워 "원래 이렇게 장사가 잘됐냐"고 물으니 "두세달 전과는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 24일 오후 이마트 창장점 3층 과일매장 모습.




지난 6개월은 중국 이마트가 대수술을 받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1996년 상하이에 첫 안테나샵을 개점했지만 이 직후 터진 외환위기는 신세계는 물론 한국 유수 기업들의 해외사업 여력을 조였다. 본격적인 중국 출점이 시작된 것은 2005년부터. 공백기간 동안 까르푸와 월마트 등이 이미 주요 상권을 차지했지만 이마트도 상하이와 톈진(天津)을 중심으로 빠르게 시장을 넓혔다. 2009년말에는 점포수가 27개까지 늘어나며 매출도 빠르게 늘었다.

하지만 중국 유통시장은 만만치 않은 전쟁터였다. 급하게 진행된 확장 위주의 출점전략은 덩치만 키웠지 사업 성공에 닿지 못했다. 생각만큼 빨리, 많은 사람들이 매장에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성공한 점포 모델이 중국 대도시 중산층을 쉽게 끌어모으리라는 예상은 오판이었던 셈이다.
▲ 상하이 바오산구에 위치한 중국 이마트 본사와 창장점

수술이 불가피했다. 집도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사위이자 정용진 부회장의 매제인 문성욱 부사장이 맡았다. 작년 5월 중국으로 파견된 그는 현지에 상주하다시피하며 중국 사업의 득실을 해부한 즉시 구조조정과 효율 개선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가망이 안보이던 11개 점포를 도려내고 우량한 16개 점포에 역량을 집중했다. 재무를 총괄하는 성낙구 상무는 "손실을 내는 점포를 처분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매년 나올 적자가 매각손실보다 큰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남아있는 점포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수익을 안겨줄 핵심 우량점포"라고 설명했다.

한국인 중심의 간부진도 대폭 교체했다. 중국 사업 총책임자에는 까르푸를 중국 대륙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데 참여했던 대만 출신 제임스 로(羅定中) 부사장이 구원투수로 영입됐다. 영업과 상품 점포개발 등 중국 시장을 보는 감각이 필수적인 직책도 업계에서 인정받는 현지인 전문가들로 채웠다. 사업 전략의 큰 그림은 글로벌 컨설팅사 출신 인사에게 맡겼다.





대수술의 결과는 올해 들어서며 매장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집객 효과가 큰 채소 등 신선식품 판매코너에서 시작됐다. 예전에는 금속 재질의 판매대에 깨끗한 모양새로 진열됐던 배추 파 시금치 등 푸성귀들이 목재 틀 위에 풍성하게 쌓였다. 현지인들이 익숙한 재래시장의 분위기를 마트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진열 방식도 세심한 부분까지 바뀌었다. 상품 배치를 담당하는 우원쥔(吳文軍) 총경리는 "종전엔 상추 같은 채소는 넓적하고 깨끗한 푸른 부분이 보이도록 내놓았지만 지금은 흙이 묻은 밑둥을 고객들이 바로 볼 수 있도록 쌓아 팔고 있다"고 했다. 전보다 다소 지저분해 보일 수 있지만 중국 소비자들이 이 부분을 보고 채소의 선도를 판단하는 것에 착안한 조치다.
▲ 최근 모습을 바꾼 이마트 창장점 채소 판매대.


현지인들에게 친숙한 분위기에서 가격도 싸게 물건을 내놓자 지난 3개월간 이 곳 창장점의 채소류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70%나 늘었다. 채소가 잘 팔리면서 바로 옆 과일 코너의 매출도 덩달아 50% 증가했다. 이 점포의 전체 매출도 20% 가량 증가한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게 우 총경리의 설명이다.

이마트가 적극적으로 전열을 정비하는 모습을 보이자 현지 업계에서는 `중국사업 철수설`이 쑥 들어갔다. 오히려 우량 점포를 중심으로 주요 품목의 매출이 늘어난 것이 경쟁 업체들의 긴장감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며칠 전부터는 인근에 있는 까르푸, RT마트 등의 직원들이 이 곳을 찾아 매장의 변화를 엿보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기도 했다. 단골손님들을 빼앗긴 경쟁사들이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변신건 전략담당 부장은 "경쟁사에서 우리가 잘 되는 모습을 정탐하러 온다는 얘기가 돌자 판매 직원들은 오히려 사기가 높아졌다"고 귀띔했다.